강원 속초관광수산시장(중앙시장)에서 일하는 K대 외국인 유학생들. 손성배 기자
햇님(형님), 1인분도 팔아요. 오징어순대 맛있어요.
네팔 출신 라주(29)는 2019년 강원도 고성의 K대 국제학부에 입학한 뒤 올해로 5년째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지난해 8월 학교를 졸업했지만 귀국하지 않고 6개월짜리 단기 구직비자인 D-10을 받아 속초 관광수산시장 튀김골목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라주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약간 많은 1만2000원이지만 하루 8시간 넘게 일할 수 있어 한 달 수입만 200만원이 넘는다. 라주는 “시장 알바생 전부가 우리학교 유학생이거나 졸업생”이라며 “학비가 500만~600만원으로 비싸지만, 알바하면 학비 내고 생활비를 쓰고도 고향에 50~60만원은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게 안에서 닭강정을 튀기던 미끄럼(21)도 같은 네팔 출신으로 지난해 K대에 입학해 1학년을 마쳤다. 졸업 이후에도 한국에 계속 살 계획인지 묻자 “아니다. 난 고향(카트만두)으로 돌아간다”며 “학비 너무 비싸다. 돈 벌고 졸업해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 가게에선 같은 네팔 출신 유학생 수바스가 누룽지 오징어순대를 구웠고, 비티에스는 감자전을 부쳤다.
점포 사장 원모(31)씨는 “속초시 인구가 겨우 8만명이고 관광 도시라서 호텔·콘도 등 숙박업소가 많은데, 내국인들은 대부분 숙박업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시장엔 아무리 구인 공고를 해도 오지 않는다”며 “우리 가게에선 3년 전부터 유학생들이 일해주고 있고, 네팔, 베트남, 몽골 출신 등 16명이 있다”고 말했다.
강원 속초관광수산시장(중앙시장)에서 일하는 K대 국제학부 외국인 유학생. 손성배 기자
‘종일 알바’만 하는 K유학생, 졸업 후 취업률은 8.2%
K유학이 지난해 22만6507명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27년 30만명 시대(정부 ‘스터디코리아 300K’)를 예고하지만 현실은 ‘4-2(학부 4년-2년 연장) 알바’ 코스로 전락하고 있다.
유학생이 알바에 매달리는 건 본국에 비해 몇배 비싼 한국 대학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다. 일단 대학 학부생으로 입학하려면 우선 어학연수생으로 들어와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부터 따야 한다. 어학연수비부터 8학기 등록금 4000만~5000만원을 마련하려면 수업은 출결 관리만 하면서 평일 오후와 주말 종일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한다. 게다가 유학생 대부분은 이공계 등 전문직 취업 분야와 거리가 먼 국제학·인문·교양학부 등을 다녀 졸업 이후 정식 취업도 어렵다.
전북 전주의 한 전문대학을 졸업한 5년 차 유학생 루나(27·가명)는 한국에 온 직후부터 알바를 쉬지 않았다. 최근 졸업 후 D-10 비자를 준비 중인 루나는 “학기 중엔 오리·샤브샤브식당에서 일하고 방학 땐 육계 가공 공장, 빵 공장에서도 일해봤다”며 “공장은 다니면 안 되지만, 일한 날 바로 현금을 주기 때문에 생활비가 모자라는 유학생들이 몰래 일을 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미얀마 공무원이 한 달에 30만짯에서 50만짯(1Kyat=0.64원)을 번다. 한국 돈으로 20만~30만원인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 한 달에 200만원 넘게 벌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유학생이 공부 대신 알바만 하니 졸업 이후엔 돌아가거나 불법 체류자가 되면서 연속성 있는 이민 정책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2023 교육통계분석자료집-고등교육통계편을 보면 지난 2022년 전문대·대학교·대학원 학위 과정 외국 유학생 졸업자의 국내 취업률은 8.2%(2만7321명 중 2253명)로 본국 귀국(28.6%·7810명), 국내 진학(11.0%·3004명) 등 조사 항목 중에서도 가장 낮다. 졸업 후 상황이 미상인 비율은 52.2%(1만4254명)로 졸업 이후 관리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도균 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은 “유학생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와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으니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현재 K유학생 제도는 불법체류를 권하고 있다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주지역 유학생 노동실태 조사보고서를 펴낸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유기만 정책국장과 미얀마 출신 유학생 루나(27·가명). 유 국장은 "유학생 비자, 취업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유학생들이 체불임금, 성희롱 등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사정이 이렇자 법무부는 유학생들에게 특정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 제도를 신설하는 등 비자 변경 경로를 넓히고 있다. 내부적으론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에게 한시적으로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주는 논의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국내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이면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고 문화도 2~4년 이상 경험했기 때문에 단순 노무를 할 수 있는 비자를 한시적으로 주고 그 기간 전문인력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게 준비하자는 논의를 범정부 차원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에서도 한 적 있다”고 설명했다.
유학생은 원칙적으로 교수(E-1)~특정활동(E-7·전문직) 비자로만 체류자격 변경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전문학사 학위를 받은 유학생이 국내 기업에 취업하려면 전공과목과 취업직종에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급여도 일정 수준 이상(동일 경력 내국인 평균의 60%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에 유학생의 국내 취업 문턱은 내국인보다 높은 편이다.
유학생 체류 연장을 위해 새로 도입된 제도로는 지역특화형 비자(F-2-R)가 있다. 인구감소 지방자치단체 89곳 중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6일 선정한 6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거주·취업 비자다. 유학생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지역 우수 외국인에게 인구감소 지역에 거주하고 취업 또는 창업을 하는 조건으로 거주 비자를 발급해주겠다는 것이다. 지방에 외국인만 모여 사는 이른바 ‘게토’가 형성될 것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으나 당장 인구 감소로 세수 악화와 소멸 위기를 겪는 지자체는 5년 이상 장기체류할 경제활동 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학생 비자 제도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유학생 졸업 후 국내에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유학생 불법 알바를 양성화할 경우 한국 유학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기적 노동 수요를 유학생으로 메우는 일이 반복되다 유학 제도가 단순 노무 취업의 관문이 될까 염려된다”고도 했다.
손성배·이영근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