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균 직접 마시며 실험…한국 온 노벨상 의사의 충고

1970년대만 해도 의학계에서는 ‘강한 위산 때문에 사람의 위 속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균을 들이마신 호주의 한 의사가 있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위염·위궤양 등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배리 마셜 서호주대 교수(72)가 주인공이다.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리 마셜 박사의 강연이 열린 가운데 의료관계 종사자들 및 의과대학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헬리코박터균을 연구한 마셜 박사는 2000년대 초반 한국야쿠르트의 제품 광고 모델로 참여해 한국인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뉴스1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리 마셜 박사의 강연이 열린 가운데 의료관계 종사자들 및 의과대학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헬리코박터균을 연구한 마셜 박사는 2000년대 초반 한국야쿠르트의 제품 광고 모델로 참여해 한국인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뉴스1

 
한국인에게 요구르트 광고로 친숙한 마셜 교수는 애초 동물 실험으로 헬리코박터균이 위장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동물은 균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혔다. 고심 끝에 그는 직접 균에 감염되기로 했다. 아내에겐 이 사실을 숨겼다. 균 복용 부작용인 위염까지 얻어가며 한 연구는 학계의 통념을 뒤집고 인정을 받았다. 

호주에 헬리코박터균 연구소를 세운 그는 노벨상 수상 후 19년인 지난 지금도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 중이다. 지난달 27일~1일 한·호주 의학·과학 데이터 공유와 대학 교류·협력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달 29일 호주 대사관에서 만났다. 그는 중앙일보에 "헬리코박터균을 정복하는 날까지 계속 연구할 것"이라면서 "한국인 연구자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해마다 3만명의 위암 환자가 새롭게 발생한다. 인구 10만명당 발병률이 미국의 10배로 발병률도 높다. 그런데 한국에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사람은 비감염자보다 위암 발생 위험이 2~10배 높아 연구·치료가 필요한 실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리 마셜 서호주대 교수. 주한 호주대사관 제공

배리 마셜 서호주대 교수. 주한 호주대사관 제공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한국 헬리코박터 협회, 연세대·고려대 관계자 등을 만났다. 모교인 서호주 대학의 장학금이 있는데, 한국 대학들과 장학 프로그램, 공동 박사학위 등 협업 기회를 넓히려고 왔다. 과거 헬리코박터균을 찾아내는 조직검사법을 개발했을 때 녹십자가 함께 개발에 나서줘 금전적 어려움을 해결했던 만큼 한국과 인연이 깊다. 우리 연구실에 한국인 제자가 없다. 한국 연구자들을 환영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중앙포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중앙포토

 

헬리코박터균 연구가 계속 필요한 이유는.   
항생제 내성 때문이다. 과거 헬리코박터균을 가진 자에 항생제를 과다 투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 항생제 내성이 강해져서 헬리코박터균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슈퍼버그(항생제에 내성 강한 균)'로 지정됐다. 20년 전에는 균과 관련한 병의 완치율이 90%였는데, 내성 탓에 완치율이 내려갔다. 
 

균이 있는지 조기에 알면 위암 위험을 줄일 수 있나. 
그렇다. 만성위염을 앓는 40대 이상이라면 내시경 검사 시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함께 하면 좋다. 특히 위암은 발암 과정에서 스스로 인지를 잘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검사를 권한다. 감염자라도 균을 적절히 통제하면 발병을 줄일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한국 내 연구에서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헬리코박터균 제거 치료를 받으니 위암 확률이 50% 낮아졌다. 
 

균에 뜻밖의 효능도 있다던데.  
미국 뉴욕의 청년층 대상 연구에선 헬리코박터균 보유자가 피부 알레르기도 덜 발생하고 천식 발생률이 50%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균이 체내에 있으면 알레르기를 막아준다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생(生)균이 아닌, 안전한 형태의 헬리코박터균 섭취가 유효할 수 있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저처럼,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로빈 워런 교수는 어찌 지내나. 
나보다 12살 더 많아 몇 년 전 은퇴했다. 부인과 사별한 뒤 낙상사고로 요양원에 계신다. 6개월마다 찾아가 맥주 한 잔 기울이곤 한다. 몇 년간 둘이서 노벨상 시상식 중계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중인 배리 마셜 서호주대 교수. 주한 호주대사관 제공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중인 배리 마셜 서호주대 교수. 주한 호주대사관 제공

 

자녀가 넷이다. 혹시 뒤를 이어 연구자가 된 자녀가 있는지. 
네 명 다 40대다. 간호사·응급실 의사·과학자·예술가로 살고 있다. 20대 장손녀 중에는 의학자도, 로켓 엔지니어도 있다. 미래 세대는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아직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없다. 조언한다면. 
AI(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일부 의사들은 대체될 위기다. 환자들이 스스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인간의 영역인 호기심과 흥미가 중요해진다.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정부는 멀리 보고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초과학이 잘 되면 모든 국민이 혜택받는다. 기업이 기술 상용화를 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연구에 따른 수혜를 본다. 연구자에겐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다. 제가 쓴 헬리코박터균 논문이 처음 나왔을 때, 학회에서 구두발표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혹평받았다. 하지만 결국 노벨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마음,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