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하루 전인 15일 찾은 밀라노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전시관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과학기술박물관 부지에 위치한 삼성전자 장외 전시관에선 이탈리아 프리미엄 소재 브랜드인 무티나와 협업한 비스포크 제품이 처음 공개됐다. 무티나의 기술을 더한 비스포크 냉장고 패널은 공예 제품 같이 울퉁불퉁한 질감이 느껴졌다. 비스포크 에어드레서는 목재 같은 질감의 패널이 적용됐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사장)은 “사람과 기술의 조화를 강조한 이번 전시처럼 의미 있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사람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인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디자인한 모듈형 냉장고도 눈길을 끌었다. 침대나 소파 옆 사이드 테이블 모양인데 서랍을 당기니 화장품이나 음료수를 넣어둘 수 있는 냉장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재욱 LG전자 키친솔루션해외영업팀장은 “주방과 거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취향에 따라 공간을 활용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주방 가전과 거실 가구를 융합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05년 밀라노에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재 연구에 집중해왔다. 가구‧인테리어‧자동차‧패션 등에 쓰이는 다양한 소재를 전자 제품에 효괒거으로 접목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2020년 뉴 셰프컬렉션 냉장고의 ‘마레 블루’ 도어에 자동차용 메탈 패널을 적용했는데, 이탈리아 금속 가공 디자인 명가인 데카스텔리와 만든 이 패널은 고급스러운 광택감과 깊이감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은 밀라노 외에도 서울‧런던‧샌프란시스코‧베이징‧노이다‧도쿄‧상파울로 등 세계 7개 주요 도시에서 디자인연구소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전시에서 2030년까지 모든 제품 디자인의 지향점이 될 5세대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본질‧혁신‧조화’를 발표했다. 2005년 4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2005 밀라노 디자인 선언’을 한 지 19년 만이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밀라노에서 디자인 전략 회의를 열고 4대 전략을 세웠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UI(사용자 인터페이스)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 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새로운 조직문화, 금형 기술 인프라 강화 등이다.
이듬해 삼성전자는 와인잔을 형상화한 디자인의 ‘보르도 TV’를 출시했고 8개월 만에 누적 판매 200만대를 기록하며 세계적 TV명가인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재용 회장도 디자인을 강조한다. 이 선대회장 별세 후 한 달만인 2022년 11월 이 회장은 미래 디자인 전략 회의를 열며 경영을 재개했다. 당시 이 회장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아 “디자인에 혼을 담아내자, 다시 한번 디자인 혁명을 이루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