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무 기간 만료에 상급병원 파견까지"…공중보건의 없어 문닫은 보건지소

이탈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으로 파견된 지난달 12일 전남 화순군 이양보건지소 진료실 불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이탈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으로 파견된 지난달 12일 전남 화순군 이양보건지소 진료실 불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716명 배치…복무 만료는 1018명

공중보건의를 새로 배치했으나 전국 보건소는 "의사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복무가 끝나는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가 훨씬 많은 데다 일부 공보의는 전공의 이탈에 따라 대학병원 응급실 등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농어촌·산간벽지 보건지소는 공보의가 없어 문을 닫은 곳도 수두룩하다.

16일 전국 지자체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전국에 신규 공보의 716명이 배치됐다. 하지만 올해 3년 차 복무 만료자는 1018명으로 신규 편입자를 훨씬 웃돈다. 

전북에는 신규 공보의 78명이 배정됐다. 이들은 군 복무 대신 36개월간 군 보건소와 읍·면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한다. 분야별로는 의과 32명, 치과 17명, 한의과 29명이다. 무주·장수·임실·순창보건의료원, 군산·남원·진안의료원, 정읍·고창·부안 응급의료기관, 도서 지역(군산 어청도·개야도, 부안 위도) 등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달 중 114명이 복무 만료로 떠나면 도내 전체 공보의는 324명에서 288명(파견 24명 포함)으로 줄어든다. 현재 도내 147개 보건지소 중 80곳엔 공보의가 1명도 없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의과 공보의 19.5% 차출…"보건지소 개점휴업"

정부와 의료계 갈등 장기화로 공보의가 종합병원으로 차출된 것도 영향을 줬다. 정부는 최근 전국 의과 공보의 1367명 중 19.5%인 267명을 대학병원 응급실 등으로 배치했다. 이 때문에 전국 상당수 보건지소는 문을 닫았다. 주민 2000여명이 사는 강원 원주시 귀래면 귀래보건지소는 지난달 11일부터 한 달가량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1명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차출됐다. 귀래보건지소 공보의가 매주 두 차례 진료하던 부론보건지소도 함께 휴진했다.


원주시보건소 관계자는 "보건지소 휴진 기간 거동이 불편한 고령 노인은 가족 도움 없인 치료받으러 가기 어려웠다"며 "그나마 지난 15일 새로 배치된 공보의가 일주일에 귀래보건지소에서 3일, 부론보건지소는 2일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강원도에 배정된 신규 공보의는 61명으로 지난해(101명)보다 40명 줄었다. 이달 83명이 복무를 마치면 지난해 270명보다 22명 적은 248명(파견 34명 포함)이 근무한다.

지난달 12일 충남 논산시 한 보건지소에서 근무 중이던 공중보건의가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되면서 보건지소 문 앞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12일 충남 논산시 한 보건지소에서 근무 중이던 공중보건의가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되면서 보건지소 문 앞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료진 업무 과중, 진료 차질" 

경남도도 공보의 339명 중 29명이 파견돼 비상이다. 경남 산청에선 공보의 12명 중 3명이 차출돼 산청군보건의료원 응급실 의사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보건지소 순회 진료도 주 3회에서 1~2회로 축소됐다. 이 때문에 "공보의 차출로 의료진 업무 과중과 진료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보의 감소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의과 공보의는 2013년 851명에서 지난해 449명으로 줄더니 올해 255명까지 줄었다. 11년 사이 3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공보의 감소 원인으론 의대 정원 내 여학생·군필자 증가, 현역병보다 긴 공보의 복무 기간 등이 거론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은 "현재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지만, 공보의는 2배인 36개월이나 된다"며 "정부는 병사 월급을 대폭 올릴 계획이어서 급여 차이마저 줄어들면 공보의 수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보의 복무 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부족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순회·비대면 진료 확대…정부 "의사 증원 필요"

정부·지자체는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순회 진료와 비대면 진료를 확대했다. 이정우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은 "공보의 1명이 보건지소 2~3곳을 순회하며 진료하고 있다"며 "지난달 전북대병원 등에 차출된 공보의 파견 기간이 최근 4주 더 연장됐다. 의정 갈등이 끝나기 전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지역 공공의료는 상당 부분 공보의에 의지하는 게 현실"이라며 "의사가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지역의사제' 등 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근본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의료 취약지 의사 인력 부족을 공보의를 통해 메우는 전략도 궁극적으론 전반적인 의료 체계 개혁과 의사 증원을 통한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며 "실제 증원엔 6년, 10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사이에 지역 의료 공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의대 정원 2000명에 대한 1년 유예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의대 정원 2000명에 대한 1년 유예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