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스크가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국가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폭염과 폭우 등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황 부진으로 인한 식량 물가 상승 추세도 심상치 않다.
극한기상의 두 얼굴…중동은 홍수, 아프리카는 가뭄에 신음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인 두바이에서는 평소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이에 폭우에 대응할 기반 시설이 부족했고, 전례 없는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는 평가다. 도시 시스템이 며칠 동안 마비되면서 폭우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클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 업체인 폴리시바자르의 니라즈 굽타 CEO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례 없는 보험 청구 건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보험사들조차도 현재 이러한 청구 규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화된 기후플레이션 “재정으로 해결 안 돼”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 가격도 1년 전의 3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에 한국에서도 제과업체 등이 원자재 물가 상승을 이유로 초콜릿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사과 등 국내에서 재배하는 농산물 물가 역시 급격히 오르는 추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제일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작황이 변했는데 재정을 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후플레이션으로 인해 앞으로 10년간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포인트씩 증가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면 실질적인 소득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5년 뒤 기후변화로 세계 소득 5분의 1 감소”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는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 연간 피해액이 38조 달러(5경 2383조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전 세계 소득의 19%에 이르는 액수다. 연구팀은 전 세계 1600개 지역에 대한 40년치 데이터를 토대로 모델링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가 경제 성장 및 지속성에 미치게 될 영향을 평가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물론 폭우, 태풍, 산불 등 다양한 기후재난의 피해액이 포함됐다.
한국의 경우 소득이 14%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독일(11%), 일본(12%)보다 기후변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의 카타르는 소득이 31% 줄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됐고, 이라크(30%)·파키스탄(26%)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PIK 과학자 막시밀리언코츠는 “북미와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큰 폭의 소득 감소가 예상되며, 남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받는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며 “기후 변화가 농업 생산량과 노동 생산성, 인프라 등 경제 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말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폭우 등 물리적 기후 리스크로 인한 피해는 이미 국내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