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전쟁의 룰'…'중동 특수' 노리나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이란으로 향하는 건 2019년 박철민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 기간을 감안해도 5년 만의 방문은 이례적인데, 시점 또한 이달 초부터 이란과 이스라엘이 군사적 보복과 재보복을 여러 차례 주고받은 직후라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그 간 상대방을 공격하고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거나 대리세력을 내세우는 식으로 수십년 간 '그림자 전쟁'을 벌여 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서로의 본토를 대놓고 때리며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방경제사업'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NK(북한)-방산' 세일즈에 열을 올리는 김정은으로서는 이처럼 중동 지역에서 '전쟁의 규칙'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을 호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번 기회에 이란과의 군사 협력을 다져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물론이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 정부군 등 이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친(親) 이란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도 잠재적 고객으로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란 루트를 뚫어서 군사 협력을 한 뒤 이란이 우방국에게 무기·군수품을 나눠주도록 함으로써 '저항의 축'에 간접 지원을 할 수 있다"며 "이란과 협조만 잘 되면 김정은은 배후에서 중동 지역의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핵↔드론 '위험한 직거래' 우려도
이후 직거래가 다소 뜸해진 측면이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러시아를 매개로 양국의 무기·기술 교류가 재개됐을 우려가 있다. 이란의 드론과 북한의 포탄·미사일이 모두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쓰이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미사일과 드론 300여개를 발사했을 때도 북한 미사일 부품과 기술이 사용됐을 거란 관측이 나왔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탄도미사일 분야에서 북한과 이란의 협력은 확실히 이뤄지고 있다"며 "양국 협력이 핵이나 드론 등 다른 분야로 이어지고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이 우위인 '핵 기술'과 이란이 우위인 '드론 기술'이 잠재적인 주고받기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비롯해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북한처럼 핵실험 등을 통한 무기화 고비를 넘지는 않았다. 반면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란에 핵기술까지 이전한다면 국제 비확산 체제에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장 경계하는 것도 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이 북한에 줄 반대급부도 우려스럽다.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쓰고 있는 이란제 무인공격기(샤헤드-136·131)가 북한에 유입돼 대남용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이란은 지난 13일 이스라엘 공습에서 "극초음속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해 표적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극초음속미사일은 북한이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공개한 '국방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최근 각종 시험 발사를 통해 개발에 주력하고 있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측면기동 능력 등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우리 군의 판단이다. 북한으로선 포탄을 대가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처럼 극초음속미사일 분야에서 앞서 있는 이란의 기술 이전을 탐낼 수 있다.
김여정, 훈련 열거하며 한·미·일 직격
특히 김여정은 이날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실시됐던 한·미, 한·미·일 훈련을 하나하나 열거했는데 그만큼 북한을 겨냥한 동맹·우방의 촘촘한 안보 협력이 아프게 다가온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3국 군의 합동 훈련이 정례화한 뒤 김여정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반발한 건 처음이다.
이날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도 담화를 내고 "미국과 대한민국의 무책임하고도 우려스러운 무력시위 행위는 지체 없이 중지되어야 한다"며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조만간 최근 한·미 연합 훈련을 빌미로 한 무력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 정권은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핵 선제타격, 전술핵 운용 훈련 등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노골화하면서 한·미의 정당한 방어적 훈련에 책임을 전가하는 여론 호도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