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 원작 연극 '천 개의 파랑'이 28일까지 서울 혜화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국립극단 최초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주연 데뷔해 인간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사진 국립극단
신장 1m45㎝의 아담한 체구, 앳된 기계 음성이 첫 대사부터 관객을 집중시켰다. 동그란 LED 패널 얼굴에 앙증맞은 초록빛 타원형 눈이 두 개. 코와 입은 없고, 대사는 가슴에 내장된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국립극단이 개발한 로봇 배우 ‘콜리’가 1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천 개의 파랑’으로 무대 데뷔했다.
로봇 배우 '콜리' 6시간 공연도 거뜬

로봇 콜리(오른쪽)와 하반신이 망가진 콜리를 데려와 수리하며 친구가 되는 10대 연재(최하윤)의 공연 중 모습이다. 무대에서 콜리는 전신이 온전한 모습과 상반신만 있는 모습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진 국립극단

연극 '천 개의 파랑' 무대에서 로봇 배우 콜리가 두 발로 서있다. 콜리의 파트너 경주마 '투데이'는 실체 없이 눈부신 조명빛을 이용해 표현했다. 장한새 연출은 "콜리의 메모리에 기억돼있을 투데이의 이미지를 투영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국립극단
뮤지컬, 퍼펫·배우·인형사 3박자 로봇 구현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내달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왼쪽부터 각 배역에 다른 배우들과 더블 캐스팅된 콜리 역의 진호(아이돌그룹 펜타곤 멤버), 효정(오마이걸) 모습이다.사진 서울예술단
“로봇과 동물과 인간의 상관관계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무대적 상상력, 공연 문법으로 전달하겠다.”(뮤지컬 예술감독 이유리 서울예술단장)
각 제작진이 던진 출사표다. 기술 발달로 빈부 격차가 장애 등 신체적 격차로 심화된 미래, 콜리의 순수한 눈에 비친 가난한 세 모녀의 사랑 이야기가 로봇 소재 SF의 신선함으로 공연계를 사로잡았다.
천선란 "연극, 다양한 LED 화면·공간 인상적"

연극 '천 개의 파랑'에선 다양한 크기의 LED 패널과 영상을 이용해 과거와 극중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시점을 배경에 표현했다. 사진 국립극단
먼저 본 연극 ‘천 개의 파랑’에 대해 그는 “LED 화면을 다채롭게 썼다. 한 무대에서 다양한 공간을 연속적으로 표현한 게 인상 깊었다. 연극을 보며 뮤지컬은 어떨지 기대감이 더 많이 생겼다”고 관람평을 남겼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당초 4일로 예정한 개막 직전 로봇 결함 탓에 개막을 2주나 늦췄다. 리허설 중 전원 꺼짐, 움직임 버퍼링 현상이 나타나 초반 10회차 공연을 취소하고 배선 회로 및 소프트웨어를 전면 수정했다.
"로봇 표정 변화 없는데 눈물 난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4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천 개의 파랑'제작발표회에서 원작자인 천선란 소설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콜리는 사람의 조작이 필요한 반자동 퍼펫 형태다. 목과 팔의 관절이 자동화된 로봇이지만, 하반신은 뒤쪽 손잡이를 밀어줘야 허우적대며 걷는 것처럼 보인다. 대사 연기는 무대 뒤 오퍼레이터가 실시간으로 미리 입력한 대사를 말하게 했다. 조명 장치 작동과 같은 원리다.
콜리와 비슷한 체구의 배우 김예은이 콜리 내면 대사 및 내레이터로 출연하고, 콜리 목소리 사전 녹음(이후 로봇 음색으로 후보정), 공연 중 몸통 연기까지 도왔다. 사람처럼 스스로 연기하는 수준엔 못 미쳤지만, 대사와 움직임은 실수 없이 해냈다.
어휘가 1000개로 제한된 콜리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인간들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은 표정과 어조 변화가 없는 로봇 말투 덕에 관객 저마다의 해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연극에선 배우 김예은(아래)이 콜리의 내면 대사, 내레이션 및 사전 목소리 녹음과 무대 위 콜리 움직임 보조 등을 맡았다. 사진 국립극단
장한새 연출은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창작진도 연습 과정에서 로봇 뒤에 사람의 목소리와 손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콜리를 마주할 때 연기 질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로봇과 연기해서 오히려 더 풍부한 장면이 나왔다”면서 “로봇에게 연극의 전권을 맡겼다”고 말했다. 또 “로봇이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교류하고 호흡을 맞추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뮤지컬 콜리 노래엔 컴퓨터 이진법 시도
이지형 퍼펫디자이너가 작품 성격에 맞춰 “3D 모델링을 통해 구동 방식은 로봇 형태지만, 퍼펫 조종법을 활용한” 결과물로 완성했다. 퍼펫과 배우가 서로 떨어져 바라보는 시적인 효과도 꾀했다.
미래 SF 장르에 맞춰 음악도 차별화했다. 박천휘 작곡가는 “콜리의 탄생 순간 첫 노래는 전자음악 요소를 썼다. 컴퓨터 이진법의 0과 1을 도·레 음에 적용한 음악도 적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