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도 감탄해 작품 살 정도…발달장애 딸 재능 발견한 엄마

오한숙희 누구나 대표(왼쪽)와 그의 딸, 발달장애 화가 장희나 씨. 지난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M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오한숙희 누구나 대표(왼쪽)와 그의 딸, 발달장애 화가 장희나 씨. 지난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M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좋습니다. 좋아요. 정말 좋습니다." 발달장애인 강승탁(28)씨에게 화가로서 전시회를 하게 된 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꿈을 묻자 "작가로 계속 사는 겁니다"라고 답한 그는 지난달부터 이달 31일까지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M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멋진 어색함'에 참여 중이다. 강 작가의 그림엔 독수리부터 용ㆍ호랑이까지 다양한 동물이 그 특유의 힘찬 붓질에 펄떡인다.  

강승탁 작가의 작품. 동물을 즐겨 그린다. 출처 비영리단체 누구나, 저작권 강승탁 작가

강승탁 작가의 작품. 동물을 즐겨 그린다. 출처 비영리단체 누구나, 저작권 강승탁 작가

 
강 작가와 함께 참여한 화가는 지적장애인 이래숙(53)씨와 중증발달장애인 장희나(33)씨다. 이들의 화가로서의 재능의 씨앗을 발견하고 싹을 틔워준 이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다. 장희나 작가의 어머니인 그는 딸을 위해 10년 전 제주로 이사했다. 딸과 함께 지낸 경험을 녹인 『우리, 희나』라는 책도 썼고, 비영리단체인 '누구나'를 설립했다. "누구나 예술로 소통한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라고 한다. 오한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딸의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평소엔 가만히 있는 것이 힘든 장 작가이지만, 그림 작업을 할 때만큼은 6시간 이상을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오한 대표는 전했다.  

지난 17일 갤러리에서 그와 작가들을 만났다. 전시의 모든 작품은 살 수 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달 이미 다녀가면서 장 작가의 작품을 찜해두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은 "이 전시회 작품들을 보니, 작가들이 속에 갖고 있던 생각을 쏟아놓은 것 같고 모든 작품이 다 빛난다"며 "작가는 자신을 표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모든 작가와 그들의 가족에게 격려와 존경을 드린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오한 대표와의 일문일답.  

참여 작가들이 미술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야간돌봄교실에 우리 아이를 보내려고 갔는데, 아이들이 다들 핸드폰에서 뭔가를 찾아서 갱지에 볼펜으로 열심히 뭔가를 그리고 있더라. 하루에 네 시간씩을 꼬박 그렇게 집중하는 걸 보면서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사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 가둬놓고 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가두리 양식장과 다를 게 없지 않나. 당시 마침 연이 닿아 (제주)시 예산 지원을 받게 됐고, 이중섭 갤러리 입주작가로 있던 양재열 작가와 오승용 작가에게 교육을 부탁했다."  
 

오한숙희 대표와 장희나 작가 모녀. 장 작가는 이날 어머니에게 "사랑해"라고 여러번 말했다. 뒤에 걸린 작품이 장 작가의 그림이다. 김경록 기자

오한숙희 대표와 장희나 작가 모녀. 장 작가는 이날 어머니에게 "사랑해"라고 여러번 말했다. 뒤에 걸린 작품이 장 작가의 그림이다. 김경록 기자

 


과정은 어땠나.
"갱지와 볼펜밖에 모르던 아이들이라, 다양한 재료를 체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무섭게 성장하더라. 희나는 오일 파스텔에 매료돼서 일명 '색 쌓기'라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했고, 승탁 작가는 이제 '용 작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림을 그리며 이 친구들이 성격도 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때 승탁 작가는 눈이 이글이글했다. 특수학교가 없어서 일반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따돌림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사람들을 잘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며 달라졌고, 이젠 '작가라고 불러달라'며 참 좋아한다. 뭉클하다."  
 

가족들도 큰 힘을 얻었을 것 같다.
"발달장애라는 게 삶의 장애가 돼선 안 되지 않겠나. 하지만 실제론 삶의 장애가 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피해를 줄까 항상 조마조마하던 가족들이 이젠 아이들 덕에 전시 작가의 부모·형제라고 불리게 된 거다. 세상에서 받던 건 동정뿐이었는데, 이젠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에 힘이 난다. 부모에겐 아이의 자존감이 곧 나의 자존감이다."  
 
오한 대표는 2018년부터 발달장애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전 및 그룹전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사회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여성학자로서의 그의 대표 저서인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말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처음엔 나도 딸의 발달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었다"며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모두 용기를 얻고, 아이들도 자신만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승탁 작가의 어머니인 문미영 씨는 "승탁이가 처음으로 뭔가에 강렬하게 흥미를 갖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미술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걸 보며 참 기쁘다"며 "다들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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