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가구 거래도 중고차처럼…가구 시장의 게임 체인저[비크닉]

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코너 속의 코너, 〈스몰브랜드 스토리〉에서는 작지만 강력한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를 모아 봅니다. 골목에서 자랐지만, 곧 광장으로 나올 준비가 된 작은 브랜드의 유일무이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도서관에 유난히 공부가 잘되는 의자가 있었어요.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 교내 기념품 숍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800달러(108만원)가 넘는 의자였어요. 그때 의자가 그렇게 비쌀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죠.”  
 

지난달 서울 성수동에 새롭게 문을 연 앤더슨씨 성수점 전경. 사진 앤더슨씨

지난달 서울 성수동에 새롭게 문을 연 앤더슨씨 성수점 전경. 사진 앤더슨씨

지난 2017년 서울 청담동의 작은 카페로 시작해, 이제는 상당한 규모의 ‘가구 거래소’ 시스템을 구축한 디자인 갤러리 ‘앤더슨씨’의 앤더슨 초이 대표의 회상이에요. 난생 처음 디자이너 가구의 가치를 깨달았던 순간이었죠. 이후 유학 중 친구 집에서 또 한 번의 문화 충격을 받았답니다. 좁고 허름한 방이지만 중고 침대와 사이드보드·조명으로 공간을 정돈해 둔 모습에서 ‘리빙 문화의 격차’를 느꼈다고 해요. 명품이나 고가 수입차 소비는 많아도, 모두 비슷한 아파트에서 소파 앞에 TV를 두고 사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어렴풋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를 꿈꿨답니다.

앤더슨씨는 디자인 가구를 위탁·대여·스타일링하는 업체입니다.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디자이너 중고 가구를 취급하죠. 찰스 임스·조지 넬슨의 가구부터 장 푸르베, 조지 나카시마의 오리지널 피스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가구를 제안해요. 쇼룸과 카페를 겸하는 앤더슨씨 청담점·성수점, 식음료(F&B)를 주력으로 하는 앤헤이븐 삼성점·현대백화점본점 등 서울에서 네 군데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온라인 숍도 운영하는데, 현재 앤더슨씨 앱에 등록된 판매 가구는 5100여점. 디자인 중고 가구를 취급하는 업체 중 국내 최대 규모죠.  

사실 빈티지 가구는 업의 특성상 규모를 키우기 쉽지 않아요. 국내 디자인 가구 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은 데다, 중고라는 허들을 하나 더 넘어야 하죠. 무엇보다 세상에 딱 한 점, 재고가 하나 뿐인 가구를 취급한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어요. 하지만 앤더슨씨는 이 어렵다는 빈티지 가구 시장에서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어요. 가구 판매를 시작한 지난 2019년부터 매출이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고 해요.  

가구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약 5년 만에 단단한 브랜드를 일궈낸 앤더슨 초이 대표를 지난 2일 만났어요. 지난달 오픈해 화제가 된 앤더슨씨 성수점에서죠.  


지난 2일 앤더슨 초이 대표가 성수점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앤더슨씨

지난 2일 앤더슨 초이 대표가 성수점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앤더슨씨

 

창문 액자에 작품 한 점, 열린 가구 거래소

앤더슨씨 성수점은 건물 두동을 합해 1983㎡(600평) 규모로 카페와 가구 쇼룸, 레스토랑과 전시 공간이 섞여 있어요. 65년 된 화물 회사 사옥을 개조한 구관과 그 뒤편에 신축 건물로 구성돼 있죠. 덕분에 양쪽 옆 건물까지 사면을 감싼 중정이 생겼어요. 초이 대표는 이 사각형 안뜰에서 ‘쿼드(Quad)’를 떠올렸다고 해요. 학교 건물로 사방이 둘러싸여 학생들이 공강 시간을 보내곤 하는 휴식처 같은 개념이죠. 

성수점은 여러 의미로 앤더슨씨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됐어요. 초이 대표는 성수점 확장을 “세대의 확장”이라고 설명하죠. 기존 청담·삼성동이 30·40세대 이상에게 소구하는 지역이었다면, 성수는 10·20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지역이니까요. 예약제로 운영해왔던 청담점과 달리, 성수점은 늘 열려있어 접근성도 높였어요. 

액자 프레임처럼 구성된 건물 창문에 가구 한점을 절묘하게 배치해 눈길을 끈다. 사진 앤더슨씨

액자 프레임처럼 구성된 건물 창문에 가구 한점을 절묘하게 배치해 눈길을 끈다. 사진 앤더슨씨

 
성수점은 또한 가구 거래소로서의 확장을 의미해요. 앤더슨씨의 성장 동력 중 하나가 바로 가구 매매 위탁 서비스예요. 현재 판매 가구 중 약 40%가 고객이 맡긴 가구죠. 덕분에 앤더슨씨에는 가구 재고가 늘 풍성해요. 빈티지 가구는 확보 수량 자체가 경쟁력이에요. 성수점 구관은 현재 위탁 가구 위주 쇼룸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디자이너 가구 중 비교적 대중적인 허먼밀러·비트라·프리츠 한센 등의 가구가 그득 놓여있죠. 언제든 들러 상태를 확인하고 바로 가져갈 수 있으니 구매자 입장에서도 편하고요. 

가구는 부피도 커 한번 들인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리 곤란하니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아요. 또한 비싼 디자인 가구는 중고로 판매할 때 떠올릴 수 있는 플랫폼도 많지 않고요. 일반 중고 거래 플랫폼은 개인 간 거래라서 정품 보증이 쉽지 않고, 누군가의 집에 가 물건을 본다는 것도 장벽이죠. 앤더슨씨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어요. 언제든 질리면 쓰던 가구를 위탁해 판매할 수 있는 거래 시스템을 구축했죠. 실제로 앤더슨 씨 앱에 가면 위탁 가구의 재고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가구 재고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앤더슨씨 앱 화면 캡처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가구 재고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앤더슨씨 앱 화면 캡처

 

빈티지 가구의 문턱을 낮추다

보통 가구는 부피 탓에 도심 외곽 창고형 매장으로 운영되곤 해요. 그래서 접근성이 떨어지죠. 바로 여기에 앤더슨씨의 두 번째 경쟁력이 있어요. 앤더슨 초이 대표는 “초반에 작더라도 도심 카페로 시작한 것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어요. 커피 한 잔, 밥 한 끼 즐기러 왔다가도 디자인 가구를 경험할 수 있게요”라고 말합니다. 전략은 적중했어요. 카페 한쪽에 놓인 임스 체어, 프리츠 한센 테이블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2019년부터는 쇼룸 공간을 늘리고 컨테이너로 가구를 들여와 팔았죠.  

디자인 가구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카페와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한다. 사진 앤더슨씨

디자인 가구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카페와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한다. 사진 앤더슨씨

  

 

스타일링은 덤입니다

식음료업과의 결합, 위탁 판매와 함께 앤더슨씨가 내세운 또 하나의 카드는 바로 스타일링이에요. 단순히 가구 한 점 파는 것을 넘어, 공간에 배치해주는 서비스죠. 앤더슨씨는 지난해에만 100여 군데의 공간 스타일링을 진행했어요. 상업·업무 공간은 물론 1인 주거 공간까지 그 의뢰도 다양해요. 앤더슨씨의 빈티지 가구를 구매하면 스타일링은 수수료 없이 해주고 있어요. 무엇보다 3개월까지 가구 무상 교환이라는 히든카드를 내세웠죠. 앤더슨 초이 대표는 “스타일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자기 의견(생활)이 반영되어야 해요. 가구라는 게 직접 쓰다 보면 아무리 잘 골라도 불만이 생길 수 있으니 교환 기회를 주는 거죠”라고 했어요.  

교환이 가능한 건 역시 풍부한 재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두 중고 상품이죠. 박스만 뜯어도 가치가 하락하는 새 상품과는 달리, 중고는 이미 감가가 돼 있기 때문에 가치가 줄지 않으니까요. 대규모 상업 공간 컨설팅이 들어오면서 위탁 가구 소진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가구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무한정 쌓아두면 공간 운용이 쉽지 않은데, 위탁으로 많은 재고를 확보하고 또 이를 빠르게 소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죠.  

지난해에만 100여군데의 공간 스타일링을 진행했다. 사진 앤더슨씨

지난해에만 100여군데의 공간 스타일링을 진행했다. 사진 앤더슨씨

 

매일 쓰는 ‘가구 저널’로 팬을 만들다

고가 디자인 가구는 자산과도 같아요. 귀한 가구를 맡기려면 어느 정도 검증이 필요하죠. 앤더슨 초이 대표는 이런 검증을 돌파하기 위한 브랜드 인지도 쌓기에 나섰어요. 바로 매주 평균 15건 이상 발행하고 있는 ‘일간 가구 저널’을 통해서죠.

앤더슨씨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은 홍보 글과는 결이 달라요. 직접 스타일링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좋아하는 디자이너 이야기, 가구 브랜드의 역사나 철학까지 읽을거리가 중심이죠. 놀라운 건 매일 300~500자 정도의 글을 직접 쓰고 있다는 거예요. 초이 대표는 “비싼 가구를 팔면서 크기나 재료, 생소한 제조사 정도의 단순 정보만 준다는 게 아쉬웠어요. 가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글을 쓰되, 전문 컬렉터도 초심자도 아닌 중간 눈높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2019년부터 꾸준히 쓰고 있어요”라고 했어요. 

거의 매일 올라오는 가구 저널은 앤더슨씨만의 강점이다. 사진 앤더슨씨 인스타그램 화면 캠처

거의 매일 올라오는 가구 저널은 앤더슨씨만의 강점이다. 사진 앤더슨씨 인스타그램 화면 캠처

 

검증된 가구 거래소를 꿈꾸다

초이 대표는 국내 하이엔드 리빙 시장이 더 커질 거라고 봐요. 안목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무엇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아름답게 정돈하려는 젊은 세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최근 국내 디자인 가구 시장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서 특정 디자이너 쏠림 현상도 많이 줄었다고 해요. “미드 센추리 모던이라는 강력한 파도가 지나간 뒤 아르데코 양식부터 영국식 가구를 즐기는 이들까지 여러 갈래의 흐름이 각각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중”이라는 게 초이 대표의 설명이에요.

이런 흐름이 지속하려면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사용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해요. 그래서 큰맘 먹고 구매한 리빙 상품의 가치를 방어할 수 있는 세컨드 마켓(중고 시장)도 잘 형성돼야 하고요. 두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가구 거래소가 되는 것, 바로 초이 대표의 지향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중고차 시장이 확실히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담 없이 비싼 차도 사는 것 아닐까요. 시세가 형성되어 있으니 언제든 팔면 되니까요. 디자인 가구도 자동차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게 하면 새 가구 시장도 활성화할 거예요. 살 때 귀한 건, 팔 때도 귀해야(buy good, sell good) 하죠. 그래야 귀한 걸 계속 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