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주주 보호 법제화 놓고 논란

차준홍 기자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후 소관 부처인 법무부가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반영한 상법 개정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다소 사그라졌었다. 하지만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투자자 이익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논란이 재점화 됐다. 정부는 이달부터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재계, “주주 이익 모호 형사처벌에 ‘경영 위축’”

박경민 기자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인 한국은 산업 구조상 설비 투자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기업 이익을 주주를 위한 배당 확대보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로 돌리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많다”면서 “하지만 이사 충실 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하면, 일부 소수 주주 등의 요구에 경영 판단이 휘둘릴 수 있다”고 했다.
금감원장 “상법 개정 배임죄 폐지 묶어 논의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이 원장은 ‘상법 개정 이슈’ 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배임죄로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과도하게 형사처벌 대상이 되다 보니 소액주주 보호가 다소 미흡할 경우 배임죄로 귀결되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형사 법정이 아닌 이사회에서 균형감을 갖고 (경영) 결정을 하도록 하고, 만약 다툼이 있다면 민사 법정에서 금전적 보상 등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이익'을 추가하되, 이를 어겼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로 해결하게 하자는 취지다.
또 이 원장은 “형법상 배임죄를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면,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상법상 규정된 특별배임죄만이라도 폐지하는 것들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방안은 정부 내에서 조율되지 않은 금감원의 개별 입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회사의 이익하고 주주의 이익이 다른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에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고려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배임죄 위반으로 인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없애줘야 한다”면서 “이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 어떤 논의를 한 건 아니지만, 이 원장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주 보호, 개별 사안 구체적으로 정해야”
전문가들은 상법을 통한 소주 주주 이익의 보호는 좀 더 구체적 사례에 맞게 더 명확히 해야 경영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면, 해석에 따른 혼란을 방지할 수 없어서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약 쪼개기 상장이 문제라고 하면 쪼개기 상장과 관련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고치는 것이 맞다”면서 “주주 보호를 이사 충실 의무로 광범히 하게 정하면, 결국 이에 따른 혼란을 기업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