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부채·환율 리스크…미국 금리 인하 봐가며 결정해야"

한은, 금리 인하 언제가 적절한가 

원자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든 뒤 수출하는 한국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도 따져봐야 할 게 많다. 물가 외에 환율 또한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애써 잡은 물가가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물가를 확실하게 잡은 것도 아닌데, 미국에 앞서 금리를 내리는 건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의 금리 인하를 기다렸다가 금리를 내리는 게 낫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만 기다리기에는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기업은 물론 소상공인, 가계의 자금 부담은 이미 한계치다.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리자는 주장이 최근 들어 솔솔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연내 금리 인하가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타이밍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금리 인하 신중론

한국경제가 고(高)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 속에 경기 침체가 지속된 지 벌써 3년째다. 소비가 위축됐던 코로나19 기간을 합치면 5년째 내수 경기는 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경기 침체 속에 맞이한 3고는 한국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며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은 가계나 기업이나 부채가 많은 나라여서 3고 상황을 견디기 더욱 어렵다. 한국은 국제금융협회(IIF) 가계부채 조사대상국 중에서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2023년 4분기 기준 100.1%다. 2021년 이후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다소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은 상태다.

관련기사

기업부채는 어떤가. 지난해 4분기 기준 GDP 대비 125.2%에 이른다. IIF 조사대상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 한국보다 이 비율이 높은 나라는 홍콩, 중국, 싱가포르 정도다. 더구나 한국 기업의 부채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22년 4분기에는 GDP 대비 121.0%였다. 1년 만에 4.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이 같은 부채는 기업이나 가계의 경제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 더욱이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의 부채가 급증세라는 건 그만큼 기업의 경영 실적과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채로 인한 금융 비용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로 매출과 수익이 악화하면 기업은 또다시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부채 부담이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 부담을 줄여주면 될 텐데, 한은은 지난해 2월부터 기준금리 3.5%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한은이 1년 넘게 금리를 3.5%로 동결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미국이 지난해 9월 이후 5.5%의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 초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금리를 3차례 정도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미국의 상반기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물가가 여전히 3%대를 이어가면서 연준은 금리 인하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도 2.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 금리 차가 더 벌어지게 되면, 원화 가치가 불안해지면서 수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때문에 원화 가치가 내리면 수입 물가가 뛰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우 2%대까지 끌어내린 물가 상승률을 잡기 더 어려워진다. 수입 물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한국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은이 미국의 금리 인하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동안 원화 가치가 1400원 아래로 떨어진 것(환율 상승)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도다. 그런데 2022년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직후 지금까지도 강(强)달러가 이어지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이전 달러당 1200원대였던 원화 가치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떨어져 지금까지도 1300원 후반대에 머물고 있다.

2022년 11월에는 원화 가치가 1400원까지 내리기도 했고, 올해 4월에는 장중 1400원이 깨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경우 원화 가치는 또다시 1400원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가 위중한 상황이란 것은 여러 지표와 현장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기업이나 가계, 중소상인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고 기업의 파산신청도 크게 늘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1~4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0%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물가가 뛰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가 더 위축될 게 뻔하고, 이는 곧바로 기업 실적으로 이어져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지만,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그나마 4월과 5월 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농수산물 가격 상승세가 여전히 심상치 않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아야 한다.

이와 함께 한계기업이 무너지며 나타나는 문제를 관리하고, 건강한 기업이 자금 사정 악화로 도산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기업도 당분간 3고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응해 경영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