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어 푸틴 대통령은 18일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을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법률 웹사이트에 발표된 대통령령 문건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하자는 러시아 외무부의 제안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타스 영문판은 이를 조약(treaty)으로 표현했다. 우샤코프 보좌관도 “해당 협정이 서명되면, 이는 기존에 체결된 기본 문서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러시아 측이 언급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사실상은 조약에 준하는 문서로 추측된다.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양국 간 조약 수준의 새 협정이 체결된다면, 상호 안전보장에 대한 내용도 기본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해 9월 방러 당시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발사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는 노동신문 보도. 뉴스1
북한은 과거 이른바 조·소 동맹 수준의 유사시 군사적 자동 개입 조항의 부활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1961년 7월 북한과 소련이 맺은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조·소 상호방위조약)은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당하면 다른 한쪽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기로 규정했다. 조·소 조약 폐기 뒤 2000년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맺은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은 유사시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고만 규정할 뿐이다.
유사시 상호 지원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규정할 지가 이번 협정에서도 핵심이 될 전망인데, 정부는 조·소 동맹 수준의 문안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는 역내 안보 지형 자체를 뒤바꾸는 결정이라 러시아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 수준으로 격상하거나, 양 측이 서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여지 있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 협정을 통해 맺어질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어떤 내용일지도 관심이 쏠린다. 이는 국가 간 관계의 수준, 상호 간의 인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식어인데, 다른 국가들도 통상적으로 쓴다. 한국도 캐나다, 페루 등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도 이미 남아프리카공화국, 몽골, 베트남, 아르헨티나, 우즈베키스탄과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는 이외에 모로코, 투르크메니스탄과는 '강화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한국과 러시아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보다 격이 높다. 그러나 실체적으로는 그렇게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이는 관계를 운용하기에 따라 수식어에 그칠 수도 있는 표현인 데다 러시아는 예전부터 외교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상대국과의 관계에 현란하고 독특한 수식어를 붙이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인도와는 ‘특별하고 특권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고, 중국과는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단순히 표현만 비교해 북·러 관계가 한·러 관계보다 상위에 있다는 식으로 보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는 해당 협정의 구체적 내용과 후속조치 등까지 감안해 판단할 문제다. 크렘린궁은 북·러 정상이 20건 정도의 문서에 서명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정상 차원에서 분야별 세부적 협력 계획 등을 직접 합의해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