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2배 부풀려 대출 더 받은 中企, 알고보니 세입자는 가족

부동산 담보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려 대출액을 높인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 대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은 의심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조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업자·중소기업 대출 약 6%…“초과 대출 의심”

24일 금감원은 지난 4~6월 은행권 자체 점검을 통해 총 1만640건의 대출 사례 표본 중 초과 대출(124건)이나 내규 위반(492건)이 의심되는 거래 616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통상 대기업은 담보 대출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조사 대상에서 뺐다.

 오전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 모습. 뉴스1

오전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 모습. 뉴스1

 
의심 사례 대다수는 대출 기준이 되는 부동산 담보 가치를 실제 시세보다 더 부풀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A씨는 자신이 보유한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B은행에게서 돈을 빌렸다. 상업용 부동산은 임대료를 많이 받을수록 대출액도 높아지는데, 조사 결과 임대차계약서상 임대료는 적정 수준 대비 2배 이상 높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 보니 해당 부동산에 임대료를 내는 사람은 A씨의 가족 관계로 추정되는 사람이었다. 금감원과 은행은 A씨가 임차인과 특수 관계를 이용해 임대료를 의도적으로 부풀렸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업 계약서’ 쓰거나 분양가 부풀리기도

임대료뿐 아니라 매매가격을 의도적으로 높여 초과 대출을 받은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C씨는 공인중개사 없이 매도인과 매수인이 쌍방으로 작성한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바탕으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조사결과 해당 계약서상 매매가격은 실거래가보다 2배 이상 높게 측정된 ‘업 계약서’였다.

할인 분양을 받고서도 기존 분양가로 부동산을 산 것처럼 속여 대출을 부풀린 사례도 있었다. D씨는 지식산업센터 분양계약서의 분양가를 기준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하지만 해당 부동산은 미분양 등으로 이미 시세가 분양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초과 대출 124건에 추가 조사 “銀 개입도 볼 것”

금감원은 초과 대출이 의심되는 거래 124건에 대해서는 은행 검사부에 2차 정밀 조사를 진행하게 하고, 조사결과를 검토한 뒤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신속·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은행 기업대출 상담창구. 연합뉴스

서울의 한 은행 기업대출 상담창구. 연합뉴스

또 다수 은행이 이런 방식의 대출 부풀리기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가 미흡했다는 점을 확인하고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대출 취급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지정할 수 없게 직무 분리를 추진한다. 상업용 부동산은 일반 주택과 달리 시세가 명확하지 않아 감정평가법인의 감정가를 기준으로 담보를 설정한다. 이때 대출 취급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지정하면 공정한 감정가 산정이 어려울 수 있다.

 
대출 한도를 과도하게 산정할 경우 전산상이나 현장조사를 통해 막는 방안도 추진된다. 실제 이번 조사 결과 대출취급자가 담보인정비율(LTV)을 초과해 대출을 내주더라도 이를 걸러줄 전산시스템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임대차계약서나 현장 확인이 소홀해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지나치게 적게 차감해 담보 가치를 부풀린 경우도 다수 나왔다. 금감원은 여신 내부통제 시스템 보완을 위해 모범규준 개정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적발한 의심 사례가 모두 잘못된 대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약 1만 건의 대출 표본 중에 6%가량의 의심 사례가 나온 것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특히 이런 부당한 대출 취급 과정에서 은행원들이 고의적인 개입 있는지도 살펴보고 점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