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철강·시멘트·레미콘 등 건설 후방산업까지 타격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공사 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 모습. 뉴스1
건설 공사에서 가장 먼저 투입되는 게 골조 공사에 필요한 철근이다. 철강업계는 작년부터 철근 발주가 끊기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조강(철강) 생산량은 2638만t으로 역시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값싼 중국산 철근까지 밀려들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계 1ㆍ2위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공장 가동률을 예년 대비 60% 수준으로 낮추거나 전기료가 싼 야간 조업에 나서는 등 고육책을 쓰고 있다. 철강 재고가 쌓이니 생산량 감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들이 착공을 미루면 우리에겐 발주가 끊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감산을 1년간 3차례나 하고 있는데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준홍 기자

24일 경기도 파주시 한 공사장이 사업 좌초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사진 김원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공사비까지 치솟자 작년부터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건설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자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아 놓고 착공하지 않은 착공 대기물량이 지난해 기준 약 33만 가구로 집계됐다. 이런 미착공 대기 물량은 2021ㆍ22년 40% 초반 정도였다가 지난해 63%로 급증했다. 실제 지난해 전국 건축 착공면적은 전년 대비 31.7% 감소한 7568만㎡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착공이 급격히 위축됐던 2009년(7125만㎡) 이후 14년 만에 가장 저조한 수치다.

차준홍 기자

김영희 디자이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기점인 경기도 파주시 운정역 근처 한 공사장은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잡초만 무성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2년 사전청약까지 진행한 사업장이지만 지난 2년간 공사비가 치솟으며 시행사가 결국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취소됐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민간이 위축되면 사회기반시설(SOC) 같은 공공 공사라도 발주가 늘어야 하는데 정부도 세수가 줄어 공사 발주를 예년만큼 못 할 거라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전국 레미콘 운송노동조합이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를 상대로 운송단가 협상을 요구하며 이달 초 휴업 돌입 당시, 수도권의 한 레미콘 공장에 믹서트럭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 가까스로 협상이 타결돼 운송이 재개됐다. 뉴스1
정부는 공공공사 발주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하반기 공사 용역 발주에 당초 계획보다 1조원 늘어난 15조3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등3기 신도시 5000가구도 발주 계획에 포함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착공이 안 되는 주된 이유인 공사비 문제와 PF 부실 완화를 위해 정부가 사업장별로 세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정부 대책이 아직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공공 공사 발주를 최대한 늘리고 있는 만큼 착공 현장이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원자재ㆍ건설업계 간 가격 갈등에 대해서도 선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