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철면무사(鐵面無私)’다. 앞의 두 글자 ‘철면’은 ‘마치 쇠처럼 차가운 얼굴 표정’이란 뜻이다. ‘무사’는 ‘사사로운 정 따윈 없다’라는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공직자라면 업무를 처리할 때, 마치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처럼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고 공정하고 엄격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실제 용례를 보면, 중국의 ‘꽌시(關係)’나 청탁, 이런 어휘들과는 반대의 의미로 자주 쓰인다.
‘철면무사’는 사람들에게 포청천으로 더 잘 알려진 포증(包拯, 999-1062) 관련 일화들에 썩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중국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훗날 청나라 시기엔 소설가 조설근(曹雪芹)의 구어체 장편소설 ‘홍루몽(紅樓夢)’에도 이 4글자가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5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홍루몽’은 청나라 상류층 가정의 디테일을 잘 묘사한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북송(北宋)의 문신이자 정치가였던 포청천의 본명은 포증이다. 청천(靑天)은 그의 호(號)다. 며느리들과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 모친이 낙태를 시도하다가 태몽이 워낙 신비해 그냥 출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음서(蔭敍)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으나, 28세에 정식으로 진사에 합격했고 젊어서부터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다. 58세에 수도 개봉부(開封府)의 부윤(府尹)으로 부임했다.
포청천 관련 드라마에 등장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던 그 특별한 사형 도구는 부임 당시 인종(仁宗)이 포청청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허리를 베는 무시무시한 작두인데, 사형수의 신분에 따라 ‘용(龍)작두, 호(虎)작두, 개작두’로 구분된 것이 요즘 시각으론 조금 별나지만 흥미롭게 다가온다.
포청천이 판결을 내리고 형을 집행함에 있어 예외는 일절 없었다. 인종의 사위도, 자신의 조카나 심지어 외삼촌도 죄가 밝혀지면 그가 지휘하는 형벌의 ‘뜨겁고 매운 맛’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당연히 친구는 물론이요, 친척조차도 그를 원망했고 차츰 그에게서 멀어졌다.
“모름지기 법과 인정 사이에서 만사가 반드시 명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의와 공정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아주면, 머지않아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게다가 그것은 법을 집행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의 원망을 받는 것도 내 몫이요, 법을 집행하며 받는 고통도 다 내 몫이다”. 죄인이 황족이니 ‘융통성’을 조금 발휘하면 어떠냐는 측근의 조언에 포청천은 이렇게 답했다.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이 일화는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포청천은 63세에 홀연 세상을 떴다.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재직하던 어느 화창한 봄날 갑자기 병사했는데, 당시 항간에는 독살설(毒殺說)이 돌기도 했다. 사후에 인종도 그에게 큰 작위를 내리는 등 청렴결백한 관리로 칭송했고, 많은 백성들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리워했다.
사후 100년도 채 되지 않은 남송(南宋)시대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희곡과 시 등이 세상에 나왔다. 훗날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그의 활약상을 다룬 ‘포공안(包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 등 다수의 장편소설이 쓰여졌다.
‘개봉에 포청천이 있다~ 공평무사하게 충신과 간신을 구별해내는구나~’. 이 주제가로 시작되는 ‘판관 포청천’ 시리즈(1993년 제작)가 KBS 2TV를 통해 우리에게 소개되었고, 시청률이 약 40%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주제가 원문에도 ‘철면무사’, 이 4글자가 등장한다.
‘좋은 행위도 나쁜 행위도 그 자체 안에 이미 상쾌함이나 벌을 포함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기록도 남겼다. 누군가에겐 이 또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