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마장면(麻醬麵)과 여름 국수 량면(凉麵) 발달사

마장면

마장면

마장면(麻醬麵)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눈에 보이는 중국 국수다. 춘장을 볶은 짜장(炸醬)에 비벼 먹는 짜장면처럼 참깨 소스인 마장(麻醬)에 비벼 먹기에 이름도 마장면이다. 대만에서 유행하는 국수라고 하는데 대만을 다녀온 여행객이 늘면서 한국에서도 퍼져 나가는 것 같다.

마장면은 어떤 음식일까? 

물론 참깨 소스에 비빈 국수라는 사실은 이름을 통해서도, 맛을 봐도 금세 알 수 있으니 국수 자체가 궁금한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국수인지 마장면이라는 국수의 유래와 그 정체성이 의문이다. 예전에는 중국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낯선 국수이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최근에 개발해 유행한 국수이기 때문인가 싶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중국에서 옛날부터 먹었던 전통 국수인가 싶지만 그것도 분명치 않다. 어쨌거나 참깨 소스인 마장이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퍼진 역사가 그다지 오래지 않았으니 마장면 역시 최근에 대중적으로 퍼지고 사랑받는 국수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와 별 관련도 없고 심지어 이름조차도 낯선 중국 국수 하나 놓고 왜 왈가왈부 정체성이고 유래를 따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마장면을 통해 중국 여름 국수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우리 냉면의 역사까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깨 소스 비빔 국수인 마장면은 중국의 여름 음식이다. 물론 언제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대부분 여름에 먹는다. 비빔 국수인 만큼 찬 음식 싫어하는 중국에서도 뜨거운 국물 없이 시원하게 혹은 미지근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장면이 대만에서 유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재미있는 것은 참깨가 들어간 국수는 여름에 많이 먹는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콩국수가 퍼지기 전, 양반들은 깻국 국수를 여름 별미로 즐겼다. 조선 후기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 양반들은 여름이면 참깨를 갈아 넣은 닭고기 국물에 밀국수를 만 후 채를 친 오이와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는데 이를 임자수탕이라고 했다. 혹은 백마자탕(白麻子湯)이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임자(荏子)와 마자(麻子)는 모두 참깨를 말한다.

중국의 마장면 역시 참깨 소스로 비빈 국수이고 동시에 여름에 먹는 국수이니 참깨가 들어가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모두 여름 음식이 되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한방에서는 참깨가 열이 많은 음식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이열치열의 원리로 여름에 먹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다만 참깨는 영양이 풍부하니 영양 보충의 의미는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참깨 그리고 참깨 소스인 마장은 모두 더운 사막지대인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서역에서 전해진 식품이니까 그 영향으로 참깨 음식이 여름 보양식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근거는 없고 어디까지나 상상에 기초한 추측일 뿐이다.

마장면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 국수로는 흔치 않은 비빔 국수이며 더운 국물이 아닌 찬 면발의 국수로 주로 여름에 먹는 시원한 국수, 량면(凉麵)이라는 것이다.
중국 량면은 우리나라 냉면처럼 얼음까지 띄워 먹는 찬 국수가 아니라 삶은 국수를 그저 찬물에 헹구어 씻는 정도다. 그러니 차디찬 냉면의 수준은 아니고 시원하거나 혹은 온기가 되살아나 살짝 미지근할 수도 있다. 중국인들 이런 국수를 놓고 서늘할 량(凉)자를 써서 량면이라고 했고 옛 시인들은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차다고 요란을 떨었다.

여름에도 냉수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시는 중국이지만 그래도 무더운 계절에는 마장면처럼 스스로 시원하다고 말하는 국수를 먹었는데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런 량면을 먹었을까?

역사는 꽤 길다. 당나라 때부터인데 이때는 량면 대신 냉도(冷淘)라고 했다. 중국 량면과 우리나라 냉면의 전신쯤 되는 국수다. 우리도 냉면이 나오기 전에는 냉도를 먹었다.

그런데 이 냉도라는 이 국수, 보통 음식이 아니다. 여름이면 당나라 황제가 주관하는 아침 조회 때, 혹은 대소 관원들을 불러 여는 잔치(燕饗)에 냉도를 차렸다. 심지어 법으로까지 규정했다.

당나라 법령집인 『당육전(唐六典)』의 황실 주방 규정에 여름에는 냉도를 차려야 한다고 정해놓았다. 바꿔 말해 그만큼 귀한 국수였고 궁중요리였다.

냉도가 뭐가 그렇게 대단했을까 싶은데 당나라에서 유명했던 찬 국수로 괴엽(槐葉)냉도가 있다. 느티나무 잎을 빻아 그 즙으로 밀가루를 반죽한 후 국수를 뽑는다. 그 국수를 찬물에 헹구어 먹는데 선명한 녹색이 식욕을 돋우었던 모양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이가 시릴 정도라고 극찬했다.

청나라 때 북경의 풍속을 적은 세시기에도 여름 하지 때는 집집마다 이 냉도를 먹는다고 했으니 아무리 여름에 냉수도 잘 안 마시는 중국인이라지만 여름철 무더위만큼은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한 끼 정도는 찬 국수 냉도, 지금의 량면으로 더위를 달랬다.

참깨 소스 마장에 비빈 찬 국수, 마장면은 중국의 이런 오랜 여름 풍속을 잇는 국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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