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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신3양(新三樣, 3대 신 수출 성장동력)’으로 꼽는 품목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신4양(新四樣)’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로 추가된 품목은 ‘수전해(電解槽)’, 즉, 그린 수소 생산 설비다.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수전해 설비: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장치로,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 수소 제조의 핵심 설비
’신4양’이라는 표현은 올해 들어 어우양밍가오(歐暘明高) 중국 과학원 원사(院士)가 “기존 신3양에 이어 수전해가 중국에 4번째 신 수출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최대 수소 생산국이기도 하다. 중국 매체 메이르징지신원(每日經濟新聞)의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 수전해 기술의 발전 과정과 수출 현황 등을 들여다본다.
중국 수전해 프로젝트 수출 붐 ‘한창’
중국 수전해 설비 업체 CSSC PERIC(派瑞氫能)는 지난 2021년(7000만 위안, 약 134억 원)부터 2023년(3억 위안, 약 575억 원)까지 3년 연속으로 수출액 2배 성장을 달성했다. CSSCPERIC의리하이펑(李海鵬) CMO(Chief Marketing Officer)는 메이르징지신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 후 CSSC의 주문량은 지금의 10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수전해 업체인 싸이커싸이쓰(SAIKESAISI Hydrogen Energy) 관계자도 “2024년 해외 시장의 매출이 중국 국내 시장 매출을 넘어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5년 후에는 (중국 외) 해외 시장이 수십 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수전해 설비에 대한 관심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다. 물론 중국의 수전해 설비 수출이 최근에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유리, 철강 등 전통 공업 분야에 사용됐지만 규모가 작았을 뿐이다. 해외 시장 규모는 대략 5~6억 위안(약 950억 원~1150억 원)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탄소 중립 시대, 그린 수소가 미래 에너지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린 수소 생산에 사용되는 수전해 설비의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일례로, CSSCPERIC가 처음으로 수주한 해외 그린 수소 프로젝트는 지난 2002년경이었다. 당시 주문은 설비 한 대에 그쳤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어난 해외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중국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CSSCPERIC의 경우, 올해 상반기 생산량이 이미 동기 대비 2배에 달했다. 내년은 1000대 이상의 설비를 생산하고, 그중 40% 이상이 해외로 수출될 것으로 사측은 전망한다. 또 다른 업체 GUOFUHEE(國富氫能)의 관계자는 이미 독일,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등지에 공장 부지를 알아보는 중이며, 오는 2025년 말 완공 및 본격 가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수출 시장은 유럽과 중동
앞서 2020년 EU 집행위원회는 ‘EU 수소 전략(EU Hydrogen Strategy)’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 따르면, EU는 2024년까지 수전해 설비 6GW(기가 와트)를 확보해 1년 내 100만톤의 그린 수소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2030년까지는 수전해 설비 40GW를 확보해 1000만 톤의 그린 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메이르징지신원은 중국 내 최대 그린 수소 프로젝트를 참고로 추산할 때, “연간 100만 톤의 그린 수소를 생산하려면 약 2600대의 수전해 장비가 필요하다”며, “EU의 수소 전략은 곧 중국 공급업체에 큰 기회가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업계에서는 유럽 외 중동 시장의 잠재력도 높이 평가한다. 대표적인 산유국이지만, 중동 지역의 국가들은 일찍이 에너지 전환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어서다.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모두 풍부한 태양광 에너지를 보유한 덕분에 그린 수소 생산의 지리적 강점을 지닌다.
야오창성(姚昌晟) SINOHYD(海德氫能) CEO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많은 태양광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력의 활용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중동 국가는 저비용의 그린에너지로 그린 수소와 그린 암모니아를 제조하고, 지리적 강점을 활용해 유럽 등지에 판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기술 선도, 제각각 현지 기준 ‘숙제’
다수의 중국 수전해 업체들은 “중국 국내에서 가격전을 하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설비의 품질과 기업의 브랜드 평판을 중시한다”며, “이 역시 중국 업체들에 (해외 수출이) 큰 이득이 되는 요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현지 인가는 해외 진출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관문이다. 중국 수전해 설비 업체들 사이에서도 해외 진출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힌다. 국가 및 지역별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높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 긴 주기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일부 기업은 설계를 아예 새로 다시하고, 새로운 공급업체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실제로 한 공급업체 관계자는 EU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 수천만 위안의 거금을 들여 수전해 설비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월 정부업무보고(政府工作報告)에서 처음으로 수소에너지를 전략적 신흥산업에 포함시켰다. 앞서 2022년에도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 중장기 계획(2021~2035)〉을 발표하는 등 수소에너지 산업을 국가의 중점 사업으로 육성해왔다.
기존 ‘신3양(태양광, 전기차, 배터리)’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자본력에 힘입어 해외 시장을 선점한 사례다. 중국산 제품과 기술에 대한 의혹은 끊이질 않지만 현재 중국이 ‘신3양’ 분야에서 글로벌 점유율을 선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어 ‘신4양’으로 새롭게 ‘낙점’된 중국의 수전해 설비는 해외 시장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까. 미래 에너지 그린 수소를 놓고 펼쳐질 글로벌 각축전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현 차이나랩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