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는 13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인사가 관장에 임명된 것은 현대판 밀정”이라고 주장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민주당 의원도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용산 자체가 밀정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가세했다. 이에 신동욱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무슨 근거로 김 관장을 뉴라이트 극우 인사로 몰아가고 윤석열 정권을 밀정 정권이라 단정 짓느냐”고 반박했다.
이 같은 봉합은 지난해 8월 9일 윤석열 대통령과 독립유공자·유족 초청 오찬으로 이어졌다. 당시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하자, 이종찬 회장이 “다시 나라를 세운다는 네이션 파운딩(nation founding)이라는 뜻의 건국이 아니라, 더욱 발전되도록 꾸려간다는 네이션 빌딩(building)”이라고 화답했고 8·15 경축식에 광복회가 참석하면서 갈등은 사그라드는 듯했다.
하지만 ‘연속적 과정’이란 추상적 개념을 고리로 만든 느슨한 봉합은 지난해 경축식 직후 불거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 다시 충돌했다. 당시 군 당국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자, 광복회는 “백지화하라”고 반발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전력을 문제 삼아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흉상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광복회 측은 “봉오동 전투 등 독립운동의 승전을 이끈 홍 장군의 상징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진보 진영에서는 윤 정부와 보수 진영을 친일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독립운동의 가치를 축소한다고 여기는 반면, 보수 쪽에서는 이승만 정부을 폄훼하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양측의 갈등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화약고”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 관장은 친일 관련 발언에 대해 13일 라디오에서 “친일 인명사전에 안익태 작곡가도 올라가 있듯, 무조건 매도하는 게 아니라 학문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건국절 논란에는 “나는 1919년이 건국일이라는 주장과 1948년을 건국절로 제정해야 한다는 양쪽을 다 비판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에서는 “광복회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는 건국절을 제정할 계획도 없고, 김 관장도 명확히 반대한다고 했다”면서 “그런데도 김 관장에게 친일파, 뉴라이트라는 프레임을 씌워 매도하고 건국절 논란을 끌고 온 것은 명백한 정치 공세”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철우 교수는 13일 통화에서 “건국절 제정이 문제가 아니라, 건국절에 힘을 싣는 듯한 주장이 여권에서 나오고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우리나라의 큰 경축일인 광복절 경축식을 보이콧하는 건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이종찬 광복회장을 겨냥해 "건국절 제정 운운은 침소봉대도 아닌 날조"라며 "역사는 '두 동강 8·15'의 책임소재를 반드시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 쟁점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념을 떠나 모두가 화합해야 할 광복절 경축일마저마저 정치 싸움에 악용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부도 이 기회에 논쟁적 역사 사안에 대해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