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포노마렌코
쿠르스크 선전 중이나 무기는 10:1 열세
한국에 원하는 건 공격 아닌 방어용 무기
북·러 밀착 위험수준…우크라 지원이 해법
한국의 포탄 간접 지원은 사실…큰 도움
한국에 원하는 건 공격 아닌 방어용 무기
북·러 밀착 위험수준…우크라 지원이 해법
한국의 포탄 간접 지원은 사실…큰 도움
“지원하면 한반도 불안
워낙 열심히 무기 지원을 호소하고 다녀서 한국 관리들이 만남을 피하려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습니다. 서울이 키이우에 무기 지원을 부담스러워하는 방증인데요.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서울시 몇배의 땅을 장악하는 등 선전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막대한 화력이 큰 부담입니다. 탄약의 양만 해도 우리가 1이라면 그들은 10 에 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에 러시아군을 죽이는 공격용 무기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살릴 방어용 무기를 요청하는 겁니다. 많은 양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사일 방어망(interceptor)을 단 1개라도 지원해준다면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 하나를 러시아의 공격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특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쏘는 탄도미사일은 다수가 북한산이에요. 한국산 방어망이 그걸 막아낸다면 그 정치적 효과는 대단히 클 겁니다.”
한국 관리들에게도 그런 논리로 설득한 듯한데, 반응은요?
“그분들은 ‘한국민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는 북한에 핵기술과 전투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메시지가 한국에 퍼지면서 정치권이 조치(무기 지원)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협박성이긴 하겠지만,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한국이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은가요.
“동의하지 않아요. 한국이 우리에게 무기를 지원하든 안 하든 푸틴은 북한에 무기와 군사 기술 공급을 계속할 겁니다. 북러 간의 군사협력이 양측 모두에 ‘윈윈’이기 때문이죠. 러시아는 부족한 무기를 북한에서 보충받고, 북한은 돈과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챙기는 한편 우크라이나 땅에서 대포나 미사일 등 북한산 무기들의 성능을 실험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북 미사일 명중률, 현재는 20%”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하는 무기의 종류는요?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포탄뿐만 아니라 아마도 미사일을 다루는 군사 전문가들도 공급하고 있어요.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인민군을 파병할 가능성은요? ) 나는 최근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침공 시 자동 군사 개입 규정)’ 3조를 고려할 때 미래에 양국이 그것(인민군 파병)을 고려할 공산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북한산 무기의 수준은 어떤가요?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품질이 대단히 조악합니다. 미사일 5개 중 1개만 맞히는 수준이라는군요. 하지만 전장에서 매일 시험이 이뤄지니 성능이 신장될 게 분명합니다. 한국 국방부 장관에 따르면 북한산 포탄도 500만 발 이상 공급됐다니 큰 위협입니다. 북한은 대러 무기지원 1위 국가입니다. 이대로 가면 북·러 군사동맹이 결성될 날이 멀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도 지난해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 지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맞습니다. 한국은 미국에 포탄을 공급하고, 미국은 그걸로 자신들의 무기고를 채운 뒤 자신들의 비축분을 우리에게 공급했죠.(현재도 그런 간접지원이 진행 중인가요? ) 맞습니다. 한국의 그런 지원은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도 미사일 방어망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는요?
“우선 한국은 미사일 방어망 생산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죠. 또 공격용 아닌 방어용 무기라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에게 (지원해도 안전하다는 걸) 설명하기 쉽습니다. 한국은 유엔과 IAEA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돕고, 인도주의적 지원도 해주고 있습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이기려면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적절한 장비가 필요한데 그게 미사일 방어망이죠. 한국이 이 장비를 우리에게 지원하면 러시아와 북한 등 침략자·불량국가들에 맞서는 평화애호국 진영과 같은 편임을 보여주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한국이 역사의 올바른 쪽에 서기를 기대합니다.”
그래도 러시아와 대놓고 척을 지기엔 정부의 부담이 큰 듯합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의식해 침략자를 자극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북·러 협력은 동맹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그만큼 한반도의 불안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침략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결정을 미루는 건 최선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활용할 수 있어요. 한국의 방어망이 북한산 미사일을 막을 능력을 실질적으로 시험해볼 기회는 여기(한반도)엔 없고 우크라이나에만 있기 때문이죠.”
전쟁이 2년을 넘기면서 국제사회의 피로감이 깊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일각에선 한국 전쟁 식 해법, 즉 현재 전선 상황에서 양측이 휴전하는 방안도 거론되는데요.
“한국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한국전은 같은 민족이 분단돼 싸운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이 이웃의 주권국가를 침략한 게 원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영·러 등이 독립과 주권을 보장한다는 부다페스트 협약에 따라 세계 3위 수준이었던 핵무기를 포기했는데, 러시아가 협약을 파기하고 침략한 겁니다. 러시아가 불법 장악한 영토를 넘겨주고 휴전한다면 수백만 국민을 침략자의 손아귀에 던져주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넘겨줄 수 없습니다.”
“돼지저금통 건넨 한국어린이 못 잊어”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의도가 전쟁을 불렀다”고 주장하는데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전쟁은 2022년이 아니라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 등 우크라이나 땅을 침략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때 우크라이나는 순수한 중립국이었고 나토 가입 의도도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의 불법적 침략이 전쟁의 원인입니다.”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 의원은 2022년 2월 25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6개월 초보 정치인”이라며 “무리하게 나토 가입을 공언해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했는데요.
“당시 윤석열·이재명 후보를 각각 만났습니다. 코로나 때라 이 후보는 온라인으로 만났죠. 그때 이 후보에게 ‘우리 대통령에 대한 당신의 언급 중 몇 가지는 틀렸다(Not true).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의도가 러시아의 침략을 촉발했다는 것도 틀렸다’고 설명했죠. (이재명 후보의 반응은요? ) 2년 전 일이고, 의례적인(formal) 대화였죠. 난 (이 후보에게) 내 입장을 말했어요. ‘한국의 지원에 감사한다. 우린 전쟁을 부른 조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봐야 하고 침략자(러시아) 아닌 피해자(우크라이나)의 주장을 숙고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내가 만난 한국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전부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핵무기 없고 중무장도 안 된 국가를 강대국이 국제법과 조약을 죄다 무시하고 불법 침략한 사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놓고 모든 정치인들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온 걸로 압니다. 기억나는 사연은요.
“1년 반쯤 전인가요. 한국 초등학생 예닐곱명이 대사관을 찾아왔어요. ‘우크라이나 친구들을 돕고 싶어요’라며 동전이 가득한 돼지 저금통을 내밀더군요. ‘용돈 아껴 저축한 돈인데 저희가 가진 전부’라고 해요. 그 아름다운 마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금통에 담긴 돈은 우크라이나 어린이 재단에 전해졌어요. 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