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희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화물산 화공기사로 일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경희대 강사, 동창화학 개발과장직을 거쳐 1978년 전남대 화학공학과 전임강사로 교편을 잡았다. 이듬해인 1979년 고(故) 성좌경 한국화학연구소(현 한국화학연구원) 초대 소장이 ‘국내 화학산업 발전에 기여해보자’고 제안하자 연구소로 옮겨 2009년 퇴직할 때까지 30년간 연구에 몰두해왔다.
고인의 아이디어로 나온 제품 중 대표작은 최초 국산 표백제 ‘옥시크린’이다. 이 박사가 1979년부터 동양화학공업과 공동연구를 시작해 1984년 상용화했다. 이로써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표백제의 국산화가 이뤄졌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널리 쓰였던 분말 세제 ‘하이타이’는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인산염’을 주 원료로 썼다. 이후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일본에서 무인(無燐) 소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옥시크린은 새 환경규격에 맞는 친환경 표백제였다. 산소계 표백제 최초로 미국 ‘그린실(Green Seal)’ 환경 마크를 획득해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표백제를 국산화해 수입대체효과만 연간 수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고인은 1985년 ‘인화알루미늄’의 국산화로 국민포장을, 1994년 ‘제올라이트’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고인과 함께 화학연구원에서 근무한 서정권(66) 박사는 “연구소 퇴직 후에도 국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게 손수 도왔다”며 “국내 화학산업에서 국산화에 힘쓴 공로가 크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조정욱씨와 사이에 2남(이승일·이승현)과 며느리 이지현·이윤경씨 등이 있다. 4일 빈소에서 만난 차남 승현(서울대병원 의사)씨는 “아버지는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논문을 많이 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며 “학문에 대한 애정이 큰 분이었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4호실, 발인 5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남한강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