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지하화 선도사업..."나눠먹기 아닌 사업성, 안전 최우선"[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서울시가 최근 경부선·경원선 68㎞ 전 구간의 지하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용산역 주변 선로 모습. 뉴스1

서울시가 최근 경부선·경원선 68㎞ 전 구간의 지하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용산역 주변 선로 모습. 뉴스1

 늘 ‘희망고문’이라는 냉소적인 꼬리표가 붙던 철도지하화 사업이 마침내 가시권에 들어왔다. 연말이면 철도지하화 사업의 시금석이 될 선도사업이 결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교통 관련 민생토론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속도·주거환경·공간혁신)’ 중 공간혁신의 대표 사업이 바로 철도지하화다. 철도로 인한 도심 단절과 주변지역 슬럼화 해소 등이 주요 목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얼마 전 철도지하화 통합개발제안서를 1차 접수한 결과, 서울·부산·인천·대전·경기 등 5개 지자체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지자체별로 보면 서울시가 요청한 사업규모가 가장 크다. 경부선 일대 34.7㎞와 경원선 일대 32.9㎞를 지하로 옮기겠다는 내용이다.  

 대상은 ▶서울역~석수역(경부선) ▶구로역~오류동역(경인선) ▶가좌역~서울역(경의중앙선) ▶효창공원역~서빙고역(경의중앙선) ▶서빙고역~도봉산역(경원선) ▶청량리역~양원역(중앙선) ▶망우역~신내역(경춘선) 등 6개 구간이다. 예상 사업비는 총 25조 6000억원에 달한다.  

 부산시는 경부선 구포~가야차량기지(8.9㎞)와 부산진역~부산역(2.8㎞)을 포함하는 11.7㎞ 구간을 사업 대상으로 신청했다. 이 중 부산진역~부산역 구간은 지하화가 어렵다고 보고, 철로 위를 인공구조물로 덮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정 사업비는 3조 6000억원이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대전시는 지상철도 구간의 지하화 대신 대전역과 조차장역사만 재구조화하는 방안(예상사업비 2조원)을 제출했다. 인천시는 경기도와 공동으로 경인선 도심 통과 구간(22.6㎞)의 지하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천시가 담당할 구간은 인천역~부개역 사이 14㎞ 구간이며, 경기도가 역곡역~송내역(6.6㎞) 구간을 맡을 계획이다. 예상사업비는 6조 6000억원이다. 

 경기도는 또 자체적으로 안산역~한대앞역 구간(5.1㎞, 안산선)과 석수역~당정역 구간(12.4㎞, 경부선) 지하화도 추진한다. 여기에 소요될 사업비는 17조 5000억원이다.    

 이처럼 5개 지자체가 지하화 대상으로 올린 철도는 길이만 총 119.4㎞에 달한다. 서울역에서 KTX 오송역까지 거리(125㎞)에 맞먹는다. 또 예상사업비는 모두 55조 3000억원으로 내년도 국토부 예산안(58조 2000억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국토부는 도시·금융·철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평가를 거쳐 12월에 1차 선도사업 대상을 선정할 방침이다. 오송천 국토부 철도건설과장은 “계획의 타당성과 사업비 추정의 합리성, 재무적 타당성 등을 종합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성’을 중점적으로 따져보겠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철도지하화 계획을 발표한 지난 1월 25일 민생토론회 모습.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철도지하화 계획을 발표한 지난 1월 25일 민생토론회 모습. 뉴스1

  
 철도·교통 전문가들도 선도사업 선정 때 사업성을 최우선 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최초로 시도하는 사업인 만큼 사업 성공 가능성이 최우선 기준이 돼야 한다”며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규모나 내용의 조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광균 송원대 철도경영학과도 “지자체들이 이론적으로 재무성을 분석한 것과 달리 실제로 민간투자자 유치가 가능할지 여부 등을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영광 전 코레일 본부장은 “사업성 판단에는 지상부지 활용의 효과 및 효율성이 가장 근본이 될 것”이라며 “철도지하 건설비, 지상부지 조성비, 지하철도 유지관리비 등을 정밀하게 추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사업성 못지않게 철도지하화 과정의 안전을 깐깐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민규 한라대 철도운전시스템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경험을 고려하면 그 어떤 기준보다 안전 측면에서 지자체의 능력을 제대로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도 “해당 철도지하화 및 사업부지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의 철도운영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제시되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대전역 주변 철로 모습. 강갑생 기자

대전역 주변 철로 모습. 강갑생 기자

 지하화 이후 철도 운영의 안정성도 핵심적인 고려요소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인프라공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사업성이 확보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철도를 지하화할 때 생길 수 있는 열차 운영상의 여러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계획안을 선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철도업계에선 지하화가 되면 기존에 거의 지상으로만 다니던 디젤기관차 위주의 화물열차가 여객열차와 함께 지하로 운행해야 하는 등 안전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철도지하화의 필요성과 방식에 대한 재검토 요구도 있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도노선이 없는 지역도 여전히 많은데 기존에 잘 다니던 철도를 땅속으로 넣는 사업을, 그것도 대규모로 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지하구간 개발을 지자체 제안에만 맡기지 말고, 국토부가 주도적으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보면 철도지하화 선도사업은 그 의미도 크지만, 선정 과정에서 여러모로 짚어봐야 할 것도 많은 듯하다. 여기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른바 지역 안배라는 미명 하에 벌어질지도 모를 ‘나눠먹기’다. 가뜩이나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작부터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상황은 더 꼬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도지하화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주저앉을 우려가 크다. 차기 대한교통학회장인 유정훈 교수가 “(선도사업 선정에) 어떠한 정치적 고려, 나눠먹기, 기계적 균형발전론도 일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