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의 깜찍한 시위가 인생을 바꿀 줄은, 이때까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소년은 다음날 바로 야구부로 달려가 가입서를 작성했고, 번듯한 유니폼을 입고서는 세상이 날아갈 듯 뛰어다녔다.
그날 이후 30년간 야구와 동고동락하다가 은퇴를 결심한 박경수(40·KT 위즈)를 최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났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은 박경수는 “이상하게도 은퇴를 하고 일상이 더 바빠진 느낌이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을 만나고, 또 이런저런 자리를 나가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면서 “아직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도 가지 못했다. 라커룸의 짐도 그대로다.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고 웃었다.
성남고를 나온 박경수는 2003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 입단 계약금은 4억3000만원. 서울 지역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와 함께 동기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박경수는 “10년 전 KT로 이적했을 때의 첫인상이 아직도 또렷하다. 속으로 ‘이 팀이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전력도 전력이었지만, 선수단의 틀 자체가 단단하지 않았다”면서 “당시에는 내가 중고참 나이였다. 아직 선배들이 많았음에도 악역을 자처했다. 후배들을 참 많이 혼냈다. 그때는 동생들이 나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형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고 하더라. 그 말이 참 뿌듯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오랜 기간(2016~2018년, 2022~2024년) KT의 주장을 맡으며 변화를 체감한 박경수는 “이번 가을야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지난해까지는 포스트시즌을 하더라도 팬들의 응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잠실구장에서도 함성이 뚜렷하게 들리더라. 나는 떠나지만, 후배들이 팬들을 위한 야구를 계속 해주리라고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목발을 짚은 채 트로피를 탄 장면은 화제가 됐고, KT 구단은 지금도 이 목발을 고이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때 다친 종아리는 큰 걸림돌이 됐고, 결국 이듬해부터 고전하다가 결국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박경수는 “은퇴하고 해설위원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후배들에게 정말 많이 혼났다. 빨리 코치 계약을 하라고 엄포를 놓은 동생들도 있었다”면서 “자랑은 아니지만 나처럼 실패와 성공을 두루 경험해본 선수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LG와 KT를 거치며 맛본 성패를 거름 삼아 후배들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