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가 은퇴하며 떠올린 기억에 남는 다섯 순간은?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해 2024년 SSG 랜더스에서 뛴 추신수(42)가 24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쳤다.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추신수는 7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다섯 장면을 꼽았다. 첫 번째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텍사스 후보로 선정됐을 때다. 고(故) 클레멘테는 중남미 국가들의 자선활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1972년 니카라과로 물자를 싣고 가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그를 기념해 상이 제정됐다. 추신수도 코로나19로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연봉을 지원했고, 한국에서도 자선활동에 힘썼다. 모교 부산고 야구 훈련시설 개선도 도왔다.

추신수는 "클레멘테가 어떻게 사회공헌을 했다는 걸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들었다. 야구선수 이전에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도 메이저리거가 되면 사회와 마이너리그 선수들 기대도 안 했는데 후보에 올라서 기뻤다. 후보였지만, 받고 싶은 상이었다"고 말했다.

은퇴 기념유니폼을 든 추신수. 연합뉴스

은퇴 기념유니폼을 든 추신수. 연합뉴스

 
추신수는 2009년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 닿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20-20을 달성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161번째 경기에 20번째 홈런을 쳤는데, 베이스를 돌 때 소름이 돋았다. 나보다 동료들이 더 기뻐했다"고 기억했다.

그동안 입었던 유니폼으로 등번호 17을 만든 조형물과 함께 선 추신수. 연합뉴스

그동안 입었던 유니폼으로 등번호 17을 만든 조형물과 함께 선 추신수. 연합뉴스

2015년엔 아시아 선수 최초로 힛 포 더 사이클을 달성했다. 추신수는 "당시 최악의 시즌이었다. 첫 6주 동안 타율 1할이 안 됐다. 사이클링 히트를 치면서 나도, 팀도 성적이 좋아졌다"며 "김하성, 이정후도 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최초라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찬호, 최희섭, 서재응 선배가 개척해준 덕분에 나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선배님들 덕분에 더 큰 꿈을 갖고 노력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타자 추신수'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출루 능력이다.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18년 5월 1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부터 7월 20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까지 52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로는 최장 기록이고, 텍사스 구단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추신수는 "사실 10경기 연속 기록부터는 다리가 아파서 지명타자로만 나섰다. 깨질만한 위기가 네 다섯 번 있었다"며 "사실 그때 경기 전에 쌀국수를 먹는 징크스가 있었다. 40번 넘게 함께 먹은 동료들도 있었다"고 추억했다.

추신수가 선택한 최고의 기억은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SSG는 정규시즌 첫 경기부터 최종전까지 1위를 달리면서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추신수는 "우승을 위해 선수들은 땀을 흘린다. 미국에서도 정말 우승을 해보고 싶었는데(이루지 못했고) 한국에서 해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추신수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추억을 쌓기보다는 우승을 하기 위해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스포츠 선수로서 이기기 위해서 훈련을 해왔다. 그런 나의 마음을 선수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팬들을 모셔놓고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추신수는 자신을 길러준 지도자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그는 "수영초 정장식 감독님과 부산고 조성옥 감독님, 두 분이 안 계셨다면 미국에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이 자리에 초대했을 것이다. 기쁜 순간을 같이 나누고 싶은데 마음이 아프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때쯤 두 분이 돌아가셔서 마음아팠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