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대만 매체들은 “12월 미국 애리조나 TSMC 공장 준공식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비효율적’이라며 미국 투자를 미적대던 TSMC는 최근 애리조나 공장 수율이 대만보다 좋다고 공개하는 등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 4년 전 바이든을 지지했던 애리조나주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밀었다.
세계 시스템 반도체에 ‘수율보다 전략’ 시대가 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승리로 이 흐름은 급물살을 탔다. 한국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와 AI 가속기 등 반도체 시장 74%를 차지하는 시스템(비 메모리) 반도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2기 반도체, ‘수율’에서 ‘전략’으로
미국 정치가 바이든의 ‘리쇼어링(미국 내 제조 회귀), 프렌드쇼어링(동맹국 내 제조)’을 넘어 트럼프의 ‘대 중국 관세 60%’를 언급하는 배경이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관세가 현실이 되면, 수율은 의미가 없어진다”라며 “이제는 수율의 시대에서 전략의 시대로 간다”라고 말했다. TSMC가 부랴부랴 미국 공장 가동을 앞당긴 배경이다. 대만 매체에 따르면, TSMC 내년 2월 이사회는 아예 미국에서 연다.
AI 패권 교체기, 한국 공급망 지위 약화돼
반면, 엔비디아에서 101번 고속도로 넘어 차로 5분 거리인 인텔 본사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인텔 관계자는 “인력 감축 중이라 출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고 했다. 인텔은 최근 대규모 정리 해고로 인건비의 절반 가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루나레이크의 제조를 자사 파운드리가 아닌 TSMC에 맡기는 등, ‘메이드 인 USA’의 꿈보다 자체 정비에 나섰다.
전 세계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단 3곳-TSMC, 삼성전자, 인텔- 중 인텔이 나가 떨어지고, 삼성은 아직 수율·성능에서 대형 고객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모두가 TSMC의 눈치를 본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신제품 AI 가속기 ‘블랙웰’의 지연은 TSMC 잘못이 아닌 우리 탓”이라고 말했고, 리사 수 AMD CEO는 다른 파운드리를 이용할 생각 있느냐는 질문에 “TSMC에 만족한다”라고 공개 답변했다.
‘엔비디아-TSMC 독주’ 시대에 한국의 입지는 크게 축소된 상태다. 모바일에서 AI로 주요 기술이 이동하며 한국 제조산업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영향이다. 모바일을 양분한 구글·애플에게, 한국은 디스플레이·카메라·기판·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에서 ‘대체 불가능한 공급처’였다. 그러나 AI 시대의 공급망인 ‘초거대언어모델(오픈AI, 구글)- 팹리스(엔비디아)- 전용 메모리(SK하이닉스)- 파운드리·패키징(TSMC)-서버(델)’로 이어지는 구도에서 한국의 영토는 줄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AI 강자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외에 연결고리가 없는데, 최신 HBM 납품이 지연되며 입지가 좁아졌다.
‘1등 선포’하고 전략은 없었던 한국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안보 전문가는 “미국이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을 고민하기 시작한 때에, 메모리를 독점하는 한국이 비메모리도 1등 하겠다고 선포한 건 국제 정세에 지나치게 무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공학부 교수도 “필요한 비전이었으나, 그에 합당한 투자와 성과 관리에서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경희권 위원은 “정부도 과거 수출·양산 위주로 메모리를 지원하던 방식을 넘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육성 정책을 정교하게 다시 짜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