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28일은 인류 최초의 상업영화 ‘열차의 도착’이 처음 상영된 날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이자 뤼미에르 형제는 1분도 채 안 되는 영화 ‘열차의 도착’을 틀었는데요. 태어나서 처음 영화를 접한 관객들 반응은 어땠을까요? 영화가 스크린 위에 펼쳐지자 관객들은 기차가 자신에게 달려온다고 착각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등 카페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건물이 우르르 무너지는 장면을 보거나 거대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봐도 당황하지 않죠. 그만큼 영화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윤단비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으로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 수상에 이어 뉴욕아시안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여러 상을 받으며 관객은 물론 영화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예술행사'로 영화 관람(52.4%)을 꼽았다고 해요. 이처럼 대중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 잡은 영화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론 웃음을 안기기도 하죠. 그렇다면 스크린 위를 수놓은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윤 감독이 연출한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와 동주가 겪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요. 윤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등 4관왕을 비롯해 뉴욕아시안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여러 상을 받으며 관객은 물론 영화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죠.
하은: '남매의 여름밤' 속 옥주와 동주는 남매인데, 남매를 주제로 한 이유가 있나요.
영화는 남매 이야기를 다뤘지만 전 외동이에요. 하하.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자매는 긴밀한 얘기도 하고 비밀이 없을 만큼 끈끈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런데 남매는 약간 묘한 게 서로 친하지만, 온전히 내 모든 얘기를 다 털어놓긴 어려운 관계더라고요. 영화 속 옥주나 동주뿐만 아니라 아빠와 고모 역시 남매잖아요. 이들이 여름방학 동안만이라도 함께 복작복작 지낸다면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죠. 그래서 남매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풀게 됐어요. 두 남매가 싸우고 화해하면서 서로를 알게 모르게 의지하는 그런 일상 속 가족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죠.
윤 감독의 첫 장편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옥주와 동주가 겪는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옥주와 동주 역을 맡은 최정운·박승준 배의 감정 연기가 일품이다.
이안: '남매의 여름밤'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는지, 감독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막연하게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다 생각할 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뭘까'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저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광주가 그리 크지 않거든요. 작은 동네에 살면서 어린 시절 가족은 내 전부였죠. 그래서 첫 장편영화에 가족 얘기를 담게 됐죠. 내가 가장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얘기는 결국 가족이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는 그런 극적인 일은 없답니다. 하하. 주변 감독이나 작가를 봐도 영감이나 소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요. 저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떠올리기도 하고 과거 추억이나 경험을 통해 소재를 찾기도 합니다. 영화적 소재를 찾았다고 해서 확신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내가 이 얘기를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종종 있죠.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계속해나갈 수 있고, 그 과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답니다.
윤단비 감독과 최정운(옥주 역)·박승준(동주 역)·박현영(고모 역)·양흥주(아빠 역) 배우(왼쪽부터)가 영화 '남매의 여름밤' 개봉 당시 프로모션 현장에 참석한 모습.
하은: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영화감독은 진짜 멋진 직업이에요. 영화감독이 되려면 보통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영화 제작사에 들어가서 연출부 막내 생활부터 해서 조감독까지 단계별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어요.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놓으면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죠. 이런 분들의 장점은 현장에 오래 계셔서 내공이 상당하다는 거예요. 또 공모전 수상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는 방법도 있고요.
성윤: 영화감독으로 일하면서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으세요.
예전에는 밤샘 촬영도 많고 연이어 촬영하면서 힘든 적도 있었는데요. 요새는 영화 제작 현장도 근로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작업해야 해요. 여기엔 이동시간은 물론 장비 나르는 시간까지 포함돼 있죠. 만약에 추가 촬영을 해야 한다면 모든 스태프에게 동의를 받아야 할 수 있어요. 때론 조명이나 카메라가 고장 나서 촬영이 지연될 때도 있잖아요. 그런 시간까지 근로기준법에 다 포함돼서 주 52시간을 초과할 때도 있죠. 그래도 이런 법 덕에 스태프들 처우가 개선됐고 현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답니다.
이안: 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제작하시나요.
저는 가족이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장르를 좋아해요. 또 성장영화도 좋아하고요. 총이나 칼이 나오는 잔인한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차기작도 드라마 장르인데 첫사랑 얘기예요. 내년 초에 영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죠.
장이안·조성윤·정하은(오른쪽부터) 학생기자가 윤단비 감독을 만나 감독의 역할과 영화 연출할 때 어려웠던 점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하은: 배우 캐스팅이나 예상 수익 예측 등 이런 일도 모두 감독이 해야 하는지 궁금해요.
영화는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이뤄져요. 영화감독은 현장을 아우르는 일을 하죠. 모든 장면을 미리 생각해야 하고 이 컷들이 편집할 때 잘 붙을지 등도 생각해야 하고요. 또 조명이나 카메라 감독과 상의해서 미리 컷 구도를 잡아놓기도 하고 배우 연기에 대한 디렉팅도 줘야 해요. 하은 학생기자가 말한 예상 수익이나 흥행 예측 등은 프로듀서, 즉 PD님이 담당하시죠. 또 영화를 다 찍고 나면 편집은 편집 기사님이 담당하시고 영화를 알리는 부분은 마케팅팀에서 진행하고요. 영화는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답니다.
어렸을 때 꿈은 영화감독이 아니었어요. 저는 소설을 좋아하는 학생이어서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영화 연출이라는 과를 보면서 호기심이 생겼죠. 저랑 잘 맞는 거 같아서 대학 입시 때 지원했는데 합격하면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과에 들어와서 공부해보니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저랑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글도 많이 써봤죠.
성윤: 감독님은 많은 상을 받으셨는데, 이렇게 수상하면 연봉이 높아지나요.
감독은 연봉이란 개념이 딱히 없어요. 하하. 상을 많이 받으면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투자받기도 좀 더 수월해진다는 장점이 있죠. 또 수상작 감독 작품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일부 관객들이 계신다는 점 역시 장점이죠. 관객들에게 응원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답니다.
윤단비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객들 만날 때가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에요. ‘위로 많이 받았다’ 혹은 ‘영화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신 관객을 만난 적 있는데, 그 순간 영화감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스태프들이 ‘영화 참여하길 잘했다’ 이런 얘기 해줄 때 정말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
하은: 시나리오는 일반 글쓰기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일반 글쓰기는 독자만 생각하고 글을 쓰면 돼요. 반면 시나리오는 관객뿐만 아니라 촬영감독이나 미술감독 등 스태프들까지 생각해서 글을 써야 하죠. 왜냐면 이 시나리오를 토대로 영상을 만들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영상화를 할 수 있게 이해시켜야 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시나리오는 가이드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면 돼요. 많은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는 점이 일반 글쓰기와 가장 다른 점이죠.
조성윤·장이안·정하은(맨 아래에서 시계방향으로) 학생기자가 윤단비 감독과 인터뷰하며 영화감독에 대해 알아봤다.
성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소년중앙 독자 또래 어린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영화는 정말 아름다운 예술이에요.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정의하는데요. 그 이유는 영화에는 미술·음악 등 다양한 예술이 합쳐져 있고 영상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자유로움이 표현의 근간이 되고 또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람들이나 여러분 주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보는 것도 좋고요.
동행취재=장이안(서울사대부초 4)·
정하은(서울 당현초 6)·
조성윤(서울 개일초 4) 학생기자
「 평소 영화 볼 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윤단비 감독님을 인터뷰한다고 해서 기대했어요. 영화 연출을 담당하는 감독님은 또 어떤 일을 할지 궁금했는데, 감독은 영화에 필요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또 준비하는 일들을 한다고 하셨어요.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보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어보니 감독님이 대단하고 멋져 보였죠. 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감독이나 배우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휴일이나 심심할 때 머리 식힐 겸 보던 한 편의 영화가 이런 여러 사람의 결과라는 게 놀라웠죠. 이제 영화를 볼 때면 그 뒤에서 수고했던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떠오를 것 같아요.
장이안(서울사대부초 4) 학생기자
이번 취재는 윤단비 감독님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평소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 연출이나 제작에 대해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됐죠. 특히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를 구상할 때 영감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얘길 듣고 놀랍고 신기했어요. 윤단비 감독님이 만든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일상 속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에요. 소중 독자 친구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 감상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꼭 감상해 보세요.
정하은(서울 당현초 6) 학생기자
영화를 보기만 하다 실제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을 만나니, 영화 만드는 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만든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봤는데 줄거리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실제 화면에 옮겨내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마침 인터뷰한 장소가 감독님이 영화를 찍은 2층 집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 영화의 느낌이 느껴져 참 좋았어요. 영화감독은 감성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도록 모든 것을 신경 쓰고 통제하는 게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과 비현실적인 얘기를 섞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영화감독이라는 일은 참 멋진 직업인 것 같습니다.
조성윤(서울 개일초 4) 학생기자
」 글=이보라 기자 lee.bora3@joins.com,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