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폭격에 1만2000조각...113년 만에 고향 돌아온 ‘지광국사탑’

고려시대 탑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긴 여정 끝에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전시됐다. 사진은 2016년 당시 경복궁 내에 있던 지광국사탑 모습. 연합뉴스

고려시대 탑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긴 여정 끝에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전시됐다. 사진은 2016년 당시 경복궁 내에 있던 지광국사탑 모습. 연합뉴스

고려 때 만든 국보 지광국사탑, 복원 기념식 

일제때 무단 반출됐다가 6·25 전쟁 당시 1만2000여 조각으로 분리되는 등 수난을 겪은 국보 지광국사탑이 복원을 마치고 113년 만에 고향 강원 원주에 안착했다.

원주시와 국립문화유산원은 12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복원 기념식을 열고 탑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인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해린은고려시대 승려에게 내리는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법천사 터에 있는 탑비(승려의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가 고려 선종 2년(1085년)에 건립된 것으로 미뤄, 묘탑 조성 시기는 해린의 입적 직후인 1070년~1085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 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 같은 조각을 뒀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지광국사탑은 탑 전체에 불상과 보살·봉황·꽃 등이 아름답게 조각·장식돼 고려 시대 승탑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원주 법천사지에 있었던 이 탑은 일제시대 처음 반출된 뒤 1975㎞에 달하는 긴 유랑생활을 했다.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복원 기념식을 앞둔 지난달 17일 조립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복원 기념식을 앞둔 지난달 17일 조립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이 탐낸 석탑…6·25 때 폭격 수난 

1911년 일본인이 무단으로 해체해 경성(서울)으로 옮겼고, 이듬해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다가 다시 돌아왔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이 있었던 경복궁 뜰로, 1923년에는 경회루 동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6·25전쟁 때는 폭격을 맞아 약 1만2000여개 파편으로 조각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서 있던 탑은 2016년 대전의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옮겨져 전면 해체와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약 5년간 보존 처리 작업을 했고, 지난해 8월 해체된 상태로 고향인 원주에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복원 위치가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확정된 이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지난 8월부터 3개월간 탑의 하중과 지진 진도 7의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면진대(免震臺·진동을 줄이는 장치)를 설치했다. 그 위에 높이 5.38m, 무게 39.4t에 달하는 탑을 올렸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보존처리 사업 기간 4권의 보고서를 발간한 데 이어 내년 지광국사탑의 복원 과정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원강수 원주시장은 “시민 노력으로 지광국사탑이 환수해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돼 뜻깊다”며 “그 의미를 간직해 문화유산의 보존·관리·활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