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돕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일본 나가사키현 공무원 다니구치 유이치(谷口雄一·50)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는 같은 현 공무원 2명,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과 나가사키대학병원 소속 피폭 전문 의료진 6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대한적십자사 알선으로 지난 11일부터 3일간 부산 권역 원폭 피해자 227명을 만났다.
일본 공무원과 의료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한국인 피해자를 도운 건 지난 2005년부터다. 대한적십자사 오상은 과장은 “한·일 정부가 협약을 맺고 지원하고 있다”며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매년 2개 권역에서 의료상담을 한다. 지금까지 총 6848명이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 생존자는 지난달 기준 1622명이다. 평균 연령이 84세로, 해마다 100여명씩 사망하고 있다.
지난 12일 만난 김일악(82) 할머니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에 살았다”며 “세 살 때 피폭돼 일곱살 때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은 열 두살 때 죽고, 남동생은 2015년 대장암으로 죽었다”며 “나도 30대부터 시름시름 앓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했다”고 말했다. 또 “35세에 낳은 아들이 5년 전 신장병 진단을 받았다”며 “나 때문에 병이 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가사키원폭병원 의사 스가 마사하루(菅正明·30)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많다”며 “나도 외할아버지가 원폭 피해자여서 그들의 고통을 잘 안다”고 말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달리 후손은 난치병을 앓아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이정부 부지부장은 “피해자 2세, 3세가 후유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며 “내 손자도 지적장애1급 진단을 받았는데,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병마와 싸우는 원폭 2세 모임인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회원은 현재 1300여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