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담에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下驢肉)라는 말이 있다.
『중국속담(諺語)사전』에서는 당나귀 고기가 전설 속 용의 고기만큼이나 맛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황제가 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건륭제가 이런 말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에 있는 산해진미를 모두 맛보았을 것 같은 건륭황제지만 아무리 그래도 존재하지도 않는 전설 속 동물인 용고기를 먹어 본 적은 없을 텐데 왜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싶지만 실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용고기란 실제 용의 고기가 아니고 비룡(飛龍)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새, 진조(榛鳥) 고기를 용고기에 빗대어 한 말이다. 진조는 흑룡강성 대흥안령 원시림 속에 사는 새로 요즘은 헤이즐넛으로 불리는 개암나무(榛) 열매를 먹고 사는 새라서 진조라고도 하고 또는 용이 부활해 새가 됐다는 전설에 따라 비룡으로도 불린다.
맛이 좋아 옛날 원시림 속에 살던 여진족들이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희소성이 높아 청나라 건륭황제 때부터 황실에 공물로 보내졌고 이후 만주족 출신의 청나라 황실에서 특별히 챙겨 먹는 보양식이 됐다고 한다. 이런 속설을 토대로 2000년대 초반부터 북경 인근에서 비룡탕(飛龍湯)이라는 이름의 보양식으로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용고기라고 불리는 비룡탕은 옛날 만주의 특별 보양식이었다니까 그렇다고 치고 아무리 지어낸 말이라고 해도 온갖 호사는 다 누렸을 것 같은 건륭황제가 왜 하필이면 당나귀 고기를 먹고 천상의 고기라며 감탄했다는 것일까?
우리야 당나귀 고기라고 하면 대부분 거부반응부터 보이겠지만 중국에서는, 특히 화북지방에서는 당나귀 고기가 꽤 유명하다고 한다. 그만큼 많이 먹고 또 즐겨 먹는다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커다란 중국 빵 사이에 구운 당나귀 고기를 끼워 먹는 이른바 당나귀 고기 샌드위치(火燒驢肉)다. 이 밖에도 당나귀 고깃국(驢肉湯) 당나귀 고기만두 당나귀 장조림 당나귀 육포 등등 다양한 요리가 발달해 있다.
후베이 성 무한의 남동쪽에 위치한 운하 도시 조하진(漕河鎭)이라는 곳에서 선단을 꾸려 배로 화물을 나르는 운송조합 조방(漕幇)과 소금 판매 상인 조합인 염방(鹽幇)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갈등이 심해지면서 소금 상인들이 배를 이용한 소금 운송을 포기하고 당나귀에 바리바리 소금을 실어 나르며 육로를 이용해 장사했다.
그러자 이 꼴이 보기 싫었던 선박 운송 조합 측에서 수시로 소금 상인을 습격해 화물을 빼앗는 한편 당나귀를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면서 장사를 방해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나귀 고기 요리가 퍼졌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소리지만 행간의 의미를 읽어보면 옛날 중국에서는 당나귀를 이용한 화물 운송이 그만큼 활발했다는 소리다. 당나귀 고기 요리가 널리 퍼져 있는 허베이 성과 후베이 성 일대는 소금과 차를 비롯해 각종 화물을 남북으로 또 동서로 실어 나르는 해상운송과 육상 운송이 교차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니 당나귀가 그만큼 많았고 낙타를 이용해 화물을 날랐던 실크로드와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낙타고기를 최고의 별미로 여겼던 것처럼 당나귀 요리가 발달했고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라는 속담처럼 많이 먹고 즐겨 먹는 당나귀 고기를 가장 맛있는 고기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당나귀 고기를 즐겨 먹게 됐을까?
아마 실크로드의 번성과 더불어 남북조 시대 이래로 육상 무역이 발달했던 당나라 무렵으로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천금식치』라는 당나라 때 나온 의학서에 당나귀 고기의 효능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 무렵 당나귀 요리가 널리 퍼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천금식치에는 당나귀 고기를 먹으면 풍기를 다스리고 근심 걱정을 잡아주며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고 했으니 심신 안정의 효과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게다가 속설이지만 당 현종이 당나귀 고기를 먹어보고는 "맛있다(好吃)"소리를 연발했다고 한다.
중국 화북지역이나 동북지역을 여행해 보면 간혹 빵 사이에 불고기를 끼워 파는 노점상을 지날 때가 있는데 이런 음식을 사 먹을 때는 어떤 고기인지를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당나귀 고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선입견을 버리고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의외로 생각지도 못했던 별미를 맛볼 수도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