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씨는 “이체하다가 실수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보이스피싱 우려도 있고 해서 휴대전화로는 은행 업무를 보지 않는다”며 “서울에 살 때까지만 해도 국민은행을 써서 계속 쓰고 싶었지만 10년 전 이사 온 이후 농협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엔 은행도 ATM도 없다
반면 서울‧경기권에서 4대 은행 점포가 없는 지역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처럼 은행 사막화는 비수도권, 그중에서도 인구가 적고 고령층 비중이 높은 군 단위에서 주로 나타났다. 4대 은행의 점포 수를 따져보면 서울 시내엔 1118개가 위치했는데 강원도에 있는 점포는 모두 합쳐도 56개에 불과했다. 서울에 있는 점포만 강원도 전체의 20배다. 면적당 개수는 물론이고 인구 비례로 따져도 적은 수준이다. 지난달 서울 인구는 934만명으로, 강원도(152만명)의 6.1배다.
4대 은행의 ATM이 하나도 설치되지 않은 지역도 전국 39곳에 달한다.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17.3%를 차지했다. 강원 고성‧화천, 경북 성주‧봉화 등 대부분 은행이 없는 지역에 ATM 역시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은행 상담이나 대출 업무뿐 아니라 간단한 입금이나 출금, 계좌이체조차 어려운 지역이 상당수라는 의미다.
어르신에게 은행은 ‘신기루’
그나마 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단위농협이나 새마을금고 등이 지방에 남아 있다지만, 은행의 점포 폐쇄 추세는 시민 불편으로 돌아온다. 주요 시중은행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되는 데다 집에서 적게는 수 ㎞부터 많게는 수십 ㎞까지 이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군 단위 지역일수록 고령층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은행은 ‘사막의 신기루’ 같은 존재다.
괴산주민인 이인숙(70)씨는 집에서 10㎞ 떨어진 은행에 올 때마다 버스를 탄다. 배차 간격이 길어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한 번 놓치면 2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씨는 “한 번 나오는 게 일이다 보니 읍내에 볼일이 있을 때 버스 타고 간다”며 “급하게 돈을 빌릴 일이 있으면 1만원씩 내고 택시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은 점포 임대료·인건비 부담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은행은 유동 인구가 많은 중심부에 위치해야 하다 보니 임대료가 비싸다”며 “특히 소도시로 내려가면 근무자를 찾는 것도 힘들어 조기 승진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겨우 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은 점포 폐쇄가 고령층의 금융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5월엔 대체 점포 없이는 영업을 중단하지 못 하도록 하는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을 시행했다. 그런데도 예외 규정 등을 이용한 은행권의 점포 폐쇄는 이어지고 있다. 천준호 의원은 “금융당국의 방치와 은행의 사회적 책임 외면으로 금융 소외 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연합회와 협의해 점포 폐쇄 결정 때 예외 없이 사전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은행 사막화가 진행된 데다 현실적으로 지역마다 점포를 두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고령 소비자의 디지털 교육 강화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은행이 없는 지역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한 은행 업무가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 간 합동점포 등 비용은 줄이면서도 지역 내 고령층의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꼭 필요하다”며 “은행이 수익성을 위해 점포를 줄여간 만큼 지역사회와 연계한 모바일뱅킹 교육 등을 활성화하는 노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