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2일(현지시간) 달러 대비 유로화는 장중 1유로당 1.0335달러로 하락했다. 2022년 11월 29일(1유로당 1.0331달러) 이후 가장 낮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전인 이달 초(1.0835달러)와 비교하면 4.6% 하락했다. 현재(현지시간 24일 오전 11시 기준)도 유로화는 1.04달러 선에 거래 중이다.
최근 유로 가치가 급락한 것은 트럼프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미국 달러 가치가 치솟고 있어서다. 연방준비제도(Fed)는 트럼프의 대표 공약인 고관세와 이민자 추방, 감세정책이 현실화되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에 금리 인하 속도를 더 늦출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가 미국 달러에 베팅하는 이유 중 하나다. WSJ에 따르면 유로ㆍ엔 등 주요 6개 통화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2일(현지시간) 기준 107.55로 올해 들어 가장 높다.
유로 가치가 추락하면서 ‘1유로=1달러’ 패리티 시대를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고, 경제 정책 윤곽이 드러나는 내년 초까지 달러 강세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이 경제 정책을 총괄할 재무부 장관 후보로 헤지펀드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인 스콧 베센트를 지명한 것도 강달러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베센트 후보자는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그림자 Fed 의장’ 방안을 제시했다. 2026년 5월까지인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임기가 끝나기 훨씬 전에 후임자를 지명해 파월 의장의 영향력을 낮춘다는 구상안이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Fed의 불협화음도 잠재적 리스크”라며 “그림자 Fed가 현실화되면 금리정책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해 시장 금리가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의 경기둔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유로 패리티를 압박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 지표를 가늠하는 유로존의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가 11월 기준 기준선(50) 아래인 48.1을 기록했다. 10개월 만에 가장 낮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 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자금이 미국 달러 등에 몰리는 트럼프 트레이드와 유럽 경기 둔화가 지속하면 1유로 가치가 1달러와 동일한 패리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