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2020년 멕시코·캐나다와 관세를 없애는 조처인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를 맺으면서 멕시코 진출을 늘려왔다. 미국 시장과 가까우면서도 인건비가 저렴하고, 무관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생산거점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멕시코에 7억5400만 달러(약 1조600억원)를 투자했다. 멕시코가 유치한 해외직접투자 국가들 중 10위 규모다. 특히 USMCA 효과가 극대화된 2022년에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액(6억8600만 달러)은 전년(3억1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기아는 2016년 준공한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연간 25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15만대 가량은 미국 수출용인데, 관세 부과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도 몬테레이에 공장을 두고 있다. 모듈·램프(현대모비스), 엔진(현대위아), 변속기(현대트랜시스)를 생산해 미국 완성차 기업에 일부 제공하는데, 이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전자 회사도 영향권에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에서 가전 공장을, 티후아나에서 TV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LG전자도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최근 멕시코에 신규 공장을 착공한 LS전선도 향후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제품을 최대한 미국으로 미리 보내 놓으려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 법인에 재고가 한동안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또는 베트남 등 제3국, 그리고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위협과 실제 실행 여부 구부해야”
2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공동으로 연 콘퍼런스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격랑의 트럼프 2기와 한국의 생존 해법’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아담 포젠 PIIE 소장은 “트럼프의 공약이 단순한 위협일지, 아니면 실제로 실행될지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중국과 멕시코에 대해선 거의 모든 수입품에 표적 관세가 매겨질 것”이라고 봤다.
다만 포젠 소장은 “중국과 멕시코는 전 세계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데서 대안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큰 영향은 없다. 겁내지 말고 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했다. 반면 제프리 숏 PIIE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관세 정책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라며 “한국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최대 13.6%, 액수로는 158억 달러(약 22조원)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분석이다. 자동차, 전자 산업 등은 영향이 클 수 있지만, 이 연구위원은 미국의 공급망 대체가 어려운 방산, 조선, 원자력 등은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