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는 몇년째 위기란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다. 지난 3분기 카카오 실적을 보면 분기 매출(1조9214억원)은 전년 대비 4% 감소했는데 영업이익(1305억원)은 5%, 순이익(785억원)은 113% 증가했다. 영업비용을 대거 줄인 덕분이지, 잘 성장 중인 건 아니다. 시장에선 ‘불황형 흑자’란 평가가 나온다. ‘위기의 일상화’가 시작되기 전, 전성기와 비교하면 성장세 둔화가 더 뚜렷하다. 2021년 3분기엔 매출(1조7408억원)이 전년 대비 58% 증가했고 영업이익(1682억원)도 전년 대비 40% 늘었다. 카카오뱅크·페이·모빌리티 등 1기 성장 동력이 쌩쌩하게 돌아가던 때였다. 카카오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현 시점, 카카오의 가장 큰 문제는 카카오톡 수익화로 매출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새 성장엔진으로 점찍고 집중 투자했던 인공지능(AI)·클라우드·헬스케어 분야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카카오는 2019년 이후 엔터프라이즈(엔터프)·브레인·헬스케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약 5434억원을 출자했다. 2022년과 지난해 엔터프에 빌려준 돈(2000억원)까지 합치면 7434억원이다. 그러나 실적을 제대로 내는 곳이 없다. 엔터프의 카카오 i클라우드·워크(협업툴)·홈(IoT) 등은 시장에서 외면받았고, 지난해 완전 자본잠식(자본총계 -884억원) 상태에 빠져 직원 숫자를 40%가량 줄였다. AI 연구 회사 브레인도 5년간 1536억원의 손실을 낸 뒤 최근 본사 AI 조직 ‘카나나’로 통합되며 회사 자체가 사라졌다.
글로벌 공략 창구로 택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도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2010년 설립한 포도트리(카카오페이지), 2016년 인수한 로엔엔터테인먼트(카카오M)를 합쳐 2021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엔터)를 설립하기까지 두 회사에 들인 돈은 약 2조870억원. 2021년 엔터는 북미 시장 개척을 위해 타파스미디어(웹툰)와 래디쉬(웹소설)를 각각 6000억원, 5000억원에 인수했다.
AI·클라우드·엔터 등에 3조…거액 쏟았지만 성과는 미미
하지만 글로벌 공략의 꿈이 채 영글기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과정에서 시세 조종 혐의로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이 구속되는, 최악의 사법리스크가 터졌다. 엔터의 적극적 인수합병 전략도 곳곳에서 투자 손실로 이어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동안만 타파스엔터테인먼트 4598억원, 멜론 2314억원, SM엔터테인먼트 1449억원 등 영업권 손상차손(실제 가치가 구매 가격보다 떨어졌을 때 발생)을 인식했다. 지난 3년간 자회사 및 관계기업 손상차손은 총 2조 443억원에 달한다. 2019년 이후 5년간 뉴 이니셔티브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3조원 가까이 투자했지만, 돈과 시간 모두 공중분해될 위기다. 회사 안팎에서 ‘잃어버린 5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카카오 본사 한 관계자는 “미래 사업의 축을 AI와 그 인프라인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으로 잡고 과감한 투자 결단을 내린 건 지금 돌아봐도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그걸 잘못됐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방향은 옳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문제가 노출됐다. 특히 이전까지 카카오 그룹을 키워온 자율 문화, 회사를 키워 상장할 경우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스톡옵션 보상 구조가 변질되면서다.
페이의 먹튀 논란이 대표적. 2021년 12월 10일 류영준 전 페이 대표 등 임원 8명이 스톡옵션으로 보유한 주식 약 900억원어치를 기습 매도(블록딜)한 사실이 공시됐다. 류 전 대표는 458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지만 상장 직후 치솟던 페이 주가는 이후 고꾸라졌다. 카카오 본사 한 기획자는 “그날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며 “경영진이 회사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는 걸 보며 허탈감을 넘어 이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과도한 자율’이 나쁜 문화로 변질돼 퍼졌다. 한 카카오 직원은 “내부 구성원이 추구하던 자율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히 보였다. 사업이나 인사 방침을 정하면 곧장 ‘왜 자유를 침해하냐’고 한다. 그때마다 회사가 아니라 대학 동아리 같았다”고 했다.
동아리 같은 자율문화 ‘독’…돌아온 김범수 뼈깎는 쇄신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있던 김범수 위원장도 돌아왔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 되고자 했으나 지금은 좋은 기업인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과거 10년의 관성을 버리고 원점부터 새로 설계해야 한다.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지난해 12월 11일 임직원 간담회)는 말과 함께였다.
이후 카카오 CA협의체와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중심으로 방임에 가까운 자율 문화를 뜯어 고쳤고, 계열사 수를 지난해 5월 147개에서 지난 4일 120개로 줄이며 ‘문어발 확장’ 논란을 벗으려 노력 중이다. 과거 인연이 있던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이른바 ‘브러더 인사’에서도 탈피하고 있다. 삼성SDS 근무 시절부터 연을 맺은 ‘찐 브러더’ 김정호 전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이 욕설과 내부 상황 폭로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지난 3월 해고된 것이 상징적이다. 한 카카오 관계자는 “해고 과정에 김 위원장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브러더십’ 탈피 의지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카나나 등 핵심사업 재정비…카톡 건재, 성장 여지 충분
미래 사업도 재정비 중이다. 특히 회사의 명운을 건, 새 AI 서비스 ‘카나나’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흩어져 있던 AI 조직을 본사 전담 조직으로 모았고, 지난달 ‘카나나’의 핵심 기능을 정신아 대표가 직접 공개했다. 메신저에서 이용자들이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을 기억했다가, 상황과 맥락에 맞는 답변을 제공하는 ‘초개인화’ AI 에이전트(비서)다. 공개 직후 카카오톡(카톡)과 별개 앱으로 출시된다는 점, 카나나만의 기술력이나 강점 등을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으로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카카오는 그간 쌓아온 서비스 운영 역량과 노하우를 쏟아 부어 반드시 성공시키겠단 계획이다.
다른 계열사도 ‘잃어버린 5년’을 뒤로 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중이다. 엔터프는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클라우드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헬스케어는 연속혈당측정기(CCGM)와 스마트폰 혈당 관리 서비스 ‘파스타’ 등을 출시, 3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60% 성장했다. 엔터는 문어발 확장이란 비판 속에서도 확보해 낸 지식재산(IP)과 유재석·아이유·아이브 등 스타를 중심으로 스토리·음악·영상 분야에서 글로벌 확장을 노리고 있다.
IT업계에선 4800만 명 이상의 월간활성이용자(MAU)를 보유한 카톡이 지난해에도 2조 1090억원의 매출(총매출의 26%)을 기록할 만큼,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핵심 캐시카우가 건재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문제를 바로잡고 외부 리스크를 해소하면 다시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카카오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제부터라도 잘못을 고치고, 국민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민·정용환·윤상언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