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협약, 돈으로 해결될까…선진국 그룹서 ‘패키지딜’ 제안설도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INC-5) 의장인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가 2일 새벽 부산에서 열린 공개 본회의에서 추후 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의미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INC-5) 의장인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가 2일 새벽 부산에서 열린 공개 본회의에서 추후 회담에서 논의한다는 의미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자는 전인류적 합의가 무산됐다. 1일 오후 7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INC-5)는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는 방안을 7시간 가량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폐막했다. 다음 회의는 내년에 열린다. 

최종 회의는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INC 의장의 5차 제안서가 채택되며 시작됐다. 이 제안서의 6조 1항에는 “다음 회의에서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과 소비를 감축하는 전 세계적 목표를 채택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1항 문안을 구성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협상 대상이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은 ‘생산 감축’ 문구를 포함하는 어떤 문안에도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반면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75개 당사국 가운데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00개국 이상이 파나마가 제출한 생산 감축 제안서를 지지했다. 이들은 생산 감축 없이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 5일차인 29일, 시민단체 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지지부진한 협상에 대해 각국 대표단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이날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가 각국 정부 대표단에 강력한 생산감축을 포함하는 협약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송봉근 기자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 5일차인 29일, 시민단체 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지지부진한 협상에 대해 각국 대표단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이날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가 각국 정부 대표단에 강력한 생산감축을 포함하는 협약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송봉근 기자

 
옵저버(observer·협약 진행 과정 감시하는 시민)로 협약에 참여한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그레이엄 포브스 INC-5 대표단장은 “100개 이상 국가가 생산 감축 지지를 표명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협약 초안은 여전히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양한 선택지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협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개최국이자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 소속인 한국 정부도 매우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였다”며 “‘생산감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환경부 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협상 중 감축을 제안하는 제안서에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원유 수출 감소한 사우디, 꿈쩍도 안 했다

세계 1위 원유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의 아민 나자르 최고 경영자(CEO)가 지난 10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연례 FII(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세계 1위 원유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의 아민 나자르 최고 경영자(CEO)가 지난 10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연례 FII(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플라스틱 협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반대를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플라스틱과 고무 제품 수출액은 2022년 기준 238억달러(약 33조)다. 총 수출액의 약 5.8% 규모다. 정확한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지난해 사우디아리바이아의 플라스틱과 고무 제품 수출은 전년보다 1%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플라스틱 생산 규제는 사우디의 원유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ㆍ인도ㆍ한국ㆍ일본 등 원유가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화요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길가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옆으로 운전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6일 화요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길가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옆으로 운전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플라스틱 오염의 피해를 직접 입고 있는 태평양 군소 도서국의 ‘생산 규제’ 목소리도 필사적이다. 내년에 INC 5.2 회의가 열려도 만장일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다수결 결정?…지원책 강화한 패키지딜 논의 가능성도

 
유엔환경계획(UNEP)은 당초 최종 합의문을 도출하기로 했던 5차 부산 회의를 5.1차 회의로 명명하고, 내년 중 5.2차 회의를 열어 협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시기와 장소는 미정이다.

협상장에서는 만장일치가 아닌 투표로 협약문을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당장 UNEP이 그동안 이어져 온 협상 방식을 다수결로 바꿀 확률은 높지 않다. 

다음 회의에서 선진국이 태평양 군소 도서 지역을 향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 생산 감축 문구에서 한 발 물러나는 ‘패키지 딜’을 제안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국과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노르웨이ㆍ일본 등이 포함된 (대부분의 유럽을 제외한) 선진국 그룹(주스칸스 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패키지 딜’로 다음 협약을 성안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회의에서 나오면서다.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 마지막 총회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 마지막 총회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익명을 요청한 정부 당국자는 “양쪽 모두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생산 감축’ 문구를 다소 완화해 합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선진국 그룹에서 규제와 지원책을 묶은 ‘패키지 딜’이 언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