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준도 "몹시 당혹"…007 작전처럼 미뤄진 '가상자산 과세' 왜

더불어민주당의 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정은 ‘007작전’처럼 은밀하게 이뤄졌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4.11.29/뉴스1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4.11.29/뉴스1

지난 1일 박찬대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깜짝 발표한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지난달 30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장외집회 직후 지도부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지도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가상자산은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만 과세할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라며 “여러 차례 논의했고, 여러 사안을 종합해 박 원내대표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결정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도부에 따르면 공식 회의 석상에서 가상자산 과세 문제가 다뤄진 건 3, 4주 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처음으로, 이재명 대표가 직접 “지금 과세가 가능한 게 맞나” 등 질문을 한 뒤 진성준 정책위의장에게 당 공식 입장을 물었다고 한다. 이에 진 의장이 “공제 한도를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상향해 내년부터 시행하자는 게 지난 총선 공약”이라고 답했고, 이 대표도 별달리 추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소득세법 담당 상임위원회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29일까지도 ‘공제한도 상향 시행’을 기조로 상임위 논의를 이어왔다. 지난달 22일 본지가 당 지도부에서 가상자산 과세 유예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보도한 직후 진 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직접 “공제 한도 상향 시행이 당의 기본 입장”이라고 진화하기도 했다.

기재위원들에게 유예 방침이 전달된 것도 1일 박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 직후였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원내지도부 및 정태호 기재위 간사, 허영 예결위 간사 등과 가진 사전 회의에서 이 방침을 통보했다고 한다. 정 의원이 ‘예산 협상 카드로라도 쓸 수 있게 천천히 발표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말했으나 박 원내대표가 ‘결정했으니 빨리 발표하는 게 맞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한 기재위원은 “간사를 통해 사후에 ‘유예가 결정됐다. 송구하다’는 취지의 입장이 전해졌다”고 말했다. 진 의장은 1일 페이스북을 통해 “몹시 당혹스러웠다. 4년 전 여야 합의로 입법됐던 자본소득 과세가 상황논리에 따라 이렇게 쉽사리 폐기되고 유예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24.09.26.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24.09.26.

당 지도부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극비리에 결정한 건 앞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문제를 놓고 당이 홍역을 치렀던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투세 유예는 이 대표가 7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처음 거론한 뒤 줄곧 당내 뜨거운 감자였다. 당 지도부가 오락가락하자 주식 투자자들은 “금투세는 재명세”라고 꼬집었다. 결국 4개월간의 혼선 끝에 이 대표가 지난달 4일 금투세 폐지로 결론내리자 “이럴 거면 뭐하러 결정을 이렇게 오래 끌었느냐”는 지적이 나왔었다. 

민주당 기재위원들은 가상자산 과세 유예와 관련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기재위원은 “금투세 때는 그나마 의원총회 논의라도 하고 지도부에 위임한 건데, 이번엔 그런 과정도 없이 언론 발표를 보고 알았다. 절차상으로 이게 맞느냐”라고 비판했다. 다른 기재위원도 “지금 절대적으로 재정이 부족한데, 인기 없는 정책이라고 여야가 과세 대신 계속 감세정책을 쓰는 게 맞느냐”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개인 투자자에게 아무런 이득도 못 주면서 금융시장의 후진성을 그대로 방치한 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