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가입 중단"에 시민들 거리로…조지아, 친러VS친서방 충돌

옛 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에서 정부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 중단 선언에 반발한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이날까지 나흘 연속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날 밤 수천~수만 명의 시위대가 의회 건물 앞에서 조지아 국기와 EU 깃발을 든 채 정부에 항의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고, 시위대 중 일부는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는 등 충돌이 격화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조지아 정부는 지난달 28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이날까지 불법 시위 등의 혐의로 150명 넘게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와 관련 EU와 미국 국무부는 조지아 정부의 결정을 규탄했고, 러시아에선 시위대를 비판하는 반응이 나왔다. EU 가입을 둘러싼 조지아 내 갈등이 사실상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리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조지아의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국기와 EU 깃발을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조지아의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국기와 EU 깃발을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개입 의혹' 승리 집권당, "EU 돈도 안 받겠다"  

이번 시위는 이라클리 코바히제 조지아 총리가 지난달 28일 "EU 가입 협상을 2028년까지 멈추고, EU의 보조금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코바히제 총리가 속한 집권 여당 '조지아의 꿈'은 친러시아 성향이다. 인구 370만 명의 조지아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했으나,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008년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남오세티야 지역의 지배권을 잃기도 했다.  

EU 가입은 조지아 헌법에 명시돼 있으며, 조지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2022년부터 EU 가입을 본격 추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조지아의 영토를 노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집권당이었던 '조지아의 꿈'은 야당의 촉구와 높은 국민적 여론을 감안해 EU 가입 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 10월 치러진 조지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입장을 바꿔 "가입 추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일 조지아 트빌리시의 의회 건물 앞에 모인 시위대. EPA=연합뉴스

지난 1일 조지아 트빌리시의 의회 건물 앞에 모인 시위대. EPA=연합뉴스

이번 총선을 둘러싼 부정 선거 의혹도 조지아 정국을 혼돈에 빠트리고 있다. 조지아는 2020년 의원내각제로 전환해 현재 국가 수반이 상징적인 역할만 하고 있다. 2018년 무소속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살로메 주라비슈빌리는 조지아의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이자 친서방 성향이다. 그는 '조지아의 꿈'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데 대해 러시아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의회가 적법하게 구성될 때까지 이달 말 자신의 임기가 끝나도 퇴임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국제 선거 감시 단체들도 이번 총선에서 투표함 조작과 뇌물 거래, 폭력 등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EU도 조지아 당국에 이런 의혹에 대한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승리를 기정사실화한 '조지아의 꿈'은 코바히제를 총리로 추대하고 주라비슈빌리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조지아 공무원 수백 명 성명…러 "우크라의 길" 

이처럼 부정 선거 논란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반정부 여론이 코바히제 총리의 'EU 가입 협상 중단' 선언으로 들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FP에 따르면 조지아의 외교·국방·교육부 소속 공무원 수백 명과 다수의 판사들이 정부의 EU 가입 협상 중단 결정에 항의하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조지아 외교관 200여 명은 "정부의 그런(EU 가입 협상 중단) 조치는 헌법에 위배되며 조지아를 국제적 고립으로 이끌 것"이라고 규탄했다. 100여개 학교도 항의 차원에서 수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조지아의 시위 현장에서 폭죽과 물대포가 발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 조지아의 시위 현장에서 폭죽과 물대포가 발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앞서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조지아 정부의 이번 결정은 조지아를 크렘린궁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며 "시위할 자유를 행사하는 조지아인들에게 과도한 무력이 사용됐다"고 말했다.  

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이웃 조지아에서 혁명이 시도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길을 따라 어두운 심연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어 "보통 이런 종류의 일은 매우 나쁘게 끝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