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내게 눈가리개 씌웠다" 北납치 블랙요원 26년만 고백

 

추천! 더중플-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30)입니다. 탐사팀은 지난 5월부터 ‘제1부-공화국 영웅 김동식의 인생유전’(1~10화), ‘제2부-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1~7화)에 이어 ‘제3부-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1~8화)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 인생을 바쳐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스파이들의 굴곡진 삶을 추적했습니다.

3부로 소개된 정구왕(65) 예비역 중령은 1998년 3월 13일 대한민국 대북 공작 역사에서 초유의 일로 기록된 ‘CKW사건’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딴 CKW사건은 북·중 접경지역 단둥(丹東)에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으로 활동 중이던 정구왕이 북한의 공작요원들에 의해 평양으로 납치됐다가 살아 돌아온 사건입니다. 26년 동안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북한 피랍 과정과 그동안 비밀로 부쳐지게 된 내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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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

 
1998년 10월 22일 목요일 중국 선양(瀋陽). 북한에 납치된 국군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 정구왕 중령이 평양을 ‘탈출’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정구왕은 자신을 호송한 북한 보위부 반탐(反探)과장과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서탑(西塔) 지역의 한 호텔 앞에 내렸다.  


 
서울 정보사 본부로 전화를 걸었다. 현지에서 접촉할 사람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호텔 부근 한국식 사우나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우나 카운터에서 30대 남성이 기다렸다.    

“피곤하실 테니 사우나를 먼저 하십시오. 저녁 차로 베이징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남성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 L의 조선족 협조자였다. 그는 정구왕에게 “다른 옷을 준비해 주겠다. 북한에서 입고 나온 옷을 전부 벗어 달라”고 했다. 옷이나 몸에 추적 장치가 달렸을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낌새였다.  

베이징 호텔에서 혼자 지낼 때는 객실 문을 의자와 탁자로 막고 잘 정도로 불안했다. 무관 보좌관 L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보사 본부에 긴히 보고할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정구왕은 메모식 필담(筆談)으로 첫 귀환 보고를 했다. 민감하고 중요한 내용이라 인편으로 전달했다.    

 
“북한에 역용(逆用)돼 탈출한 것으로 연출됐다.”


북한이 정구왕을 납치한 뒤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려고 역용공작을 꾸미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였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DJ 방중 탓에 선양 돌아서 귀국

 
11월 10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곧장 서울의 K호텔로 향했다. 그는 열흘간 정보사 안가(안전가옥)로 쓰였던 서울 중심가 호텔 두 곳에서 안기부 조사를 받았다.  

안기부 수사관은 위장 탈출과 역용공작이 미심쩍었던지 직설적으로 물었다.  

 
“북한이 어설픈 역용 임무를 주며 당신을 살려 보낸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북 당국의 물밑협상에 따라 이뤄졌는지는 제가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간접적인 유화 제스처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남조선 혁명역량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라는 계산도 깔렸을 겁니다. ‘당신은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할 테니 불만이 쌓일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영원히 회색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주홍글씨를 새긴 거죠. 밑져야 본전이니 ‘아니면 말고, 해주면 더 고맙다’는 심보도 있었을 거고요.”(정구왕)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1996~1998년 중국 단둥에서 블랙 요원으로 활동할 당시 현지 협조자와 사진을 찍었다. 뒤로 북한 신의주가 보인다. 사진 정구왕 중령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1996~1998년 중국 단둥에서 블랙 요원으로 활동할 당시 현지 협조자와 사진을 찍었다. 뒤로 북한 신의주가 보인다. 사진 정구왕 중령

 

 
“보안상 눈가리개를 사용하겠습니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수사관이 명령조로 말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정원)로부터 신병을 인계받은 기무사는 정구왕 국군정보사 중령에게 검은 눈가리개를 씌웠다. 1998년 12월 3일 대공분실로 가는 차량 안이었다.    

 
정구왕은 북한에서의 악몽을 떠올렸다. 눈가리개를 찬 채 불안에 떨며 어딘가로 끌려다니던 억류의 나날이 덮쳐왔다. 내 조국에 와서도 눈가리개를 차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너무도 서러웠다. 남과 북,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회색인이라고 주홍글씨가 새겨진 느낌이었다.    

 
“나는 왜 대한민국 대북 공작사에서 국군정보사 흑색 요원이 북한에 납치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희생양이 됐을까.”


정구왕은 스스로 물었다. 평양을 탈출해 98년 11월 10일 서울 김포공항에 귀환한 직후 안기부에 불려갔다. 10일간에 걸친 조사는 피랍 배경, 북한 억류 생활, 위장 탈출 경위, 역용 공작의 가능성과 이중 스파이 여부를 추궁했다.  

 

1995~1998년 정구왕 전 중령이 중국 옌지와 단둥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거점 파견 활동을 하던 모습. 왼쪽은 북한 신의주가 보이는 국경 지대에서 찍었다. 오른쪽은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위장 활동했던 시절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모습. 사진 정구왕 전 중령

1995~1998년 정구왕 전 중령이 중국 옌지와 단둥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거점 파견 활동을 하던 모습. 왼쪽은 북한 신의주가 보이는 국경 지대에서 찍었다. 오른쪽은 고려인삼세영산업 단둥지사장으로 위장 활동했던 시절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모습. 사진 정구왕 전 중령

 
정구왕은 여러 명의 정보원이나 조력자를 자신의 휴민트로 만들어 운용했다. 95년 중국 옌볜에서 단기 어학연수부터 알게 된 중국 동포 홍영춘(95년 당시 40세), 정구왕의 납치에 가담한 장세영(27세), 북한 신의주 출신의 중국 국적 여성 리계향(25세)이 그런 경우였다.  

노골적으로 돈 요구하는 휴민트  

 
홍영춘은 북한 군사 교범을 빼내 와 정보사 본부로부터 유능한 휴민트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북한 군사와 관련된 양질의 첩보를 계속 물어왔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이 적다고 불만을 종종 털어놓으며 돈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공작금 명목으로 주던 1만~2만 위안(약 100만~200만원)에 만족하지 않았다.

 
“돈 되는 물품을 매점매석해서 밀무역으로 한몫 챙겨보고 싶으니 자금을 좀 융통해 달라. 언제까지 정 부장님(정구왕)이 주는 푼돈만 받고 살 순 없지 않은가. 옌지(延吉)에 노래방을 열게 해달라.”


그를 조종해야 하는 공작관 정구왕으로선 그의 막무가내에 마냥 휘둘릴 수 없었다. 

1997년 중국 단둥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숙소 앞 마당에서 고려인삼세영산업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정구왕 제공

1997년 중국 단둥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숙소 앞 마당에서 고려인삼세영산업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정구왕 제공

 

5화-조국은 내게 눈가리개 씌웠다, 北탈출 요원에 새긴 주홍글씨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7969



 
98년 초 그는 북한의 모래를 대량으로 수입해 한국으로 보내는 사업을 구상했다. 분당‧일산 등 신도시 건설로 모래 수요가 크던 시절이었다. 당시 정보사 후배 요원이 단둥에 출장을 와서 정구왕에게 한 말도 자극이 됐다. 후배는 “지금 본사(정보사 본부)는 북한의 핵 개발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는 게 초미의 관심이다. 영변 핵 시설 일대의 모래를 수거해오면 핵 개발 단서를 잡는 공을 세울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해 중국 춘절(春節‧음력설)이 지난 2월께 정구왕은 리계향의 막내 오빠를 접촉해 사업 얘기를 꺼냈다.

 
“북한에서 모래를 퍼다 한국에 팔면 어떻겠소.” (정구왕)


“신의주 가까운 곳 하천에서 모래 한 포대 정도 샘플로 가져올 수 있다. 어렵지 않으니 해봅시다.”(리계향 오빠)


흔쾌히 동의를 끌어낸 정구왕은 서울의 협조자인 ‘김 사장’에게 한국의 건축용 모래 시세와 수입에 관해 알아보게 한 뒤 단둥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모래 사업이 성공한다면 북한에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리계향의 첫째 오빠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북한 노동당 고위층과 군 간부로까지 침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사업이 무르익던 중 정구왕의 휴민트 장세영의 밀고와 배신으로 인해 정구왕은 덫에 걸려 피랍됐다. 정구왕의 구상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10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북한의 군사도발실’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전시실을 둘러본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파공작원이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장진영 기자

10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북한의 군사도발실’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전시실을 둘러본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파공작원이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장진영 기자

 

“리계향과 동거했냐”… 모멸적 질문

 
1999년 기무사는 정구왕에게 북한의 반탐 과장 얼굴을 그려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데생에 소질이 있었다. 30분 정도 그린 스케치를 제출했다. 기무사 수사관은 조사실 건물에 마련된 사우나실로 정구왕을 데려갔다. 고문 흔적이 있는지 직접 눈으로 맨몸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은 “이런 식으로 하면 검찰에 기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무슨 혐의인지 설명은 안 했지만, 북한에 군사 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는 사실상 위협이었다. 갈등의 절정은 정보사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었던 리계향에게 있었다. 수사관은 리계향과의 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리계향과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만났느냐?”(수사관)  


“자주 볼 때는 2~3번 정도 얼굴을 마주친 것 같다.”(정구왕)


“어디서?”(수사관)  


“보통 리계향 집이었다. 그녀 오빠들과의 사업도 얘기하고 지인으로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었다.”(정구왕)


“그럼 동거를 한 거네!”(수사관)  


“그게 어떻게 동거인가. 친하게 지낸 건 맞지만 내 집이 있고 그녀 집이 따로 있는데….”(정구왕)


“일주일에 2~3번 만나면 그렇게 본다.”(수사관)


정구왕은 속으로 ‘맘대로 하세요’라고 단념했다. 설명하고 설득하려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이미 치정에 얽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단정한 느낌이었다.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임관 뒤 80년대 초반 공수부대와 특공여단 근무 시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은 85년 선봉중대장 수여식 모습. 21개 중대 중 자신이 맡은 부대를 2년 연속 선봉 중대로 만들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임관 뒤 80년대 초반 공수부대와 특공여단 근무 시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은 85년 선봉중대장 수여식 모습. 21개 중대 중 자신이 맡은 부대를 2년 연속 선봉 중대로 만들었다. 사진 정구왕 제공

 

피랍 이후 286일 만의 귀가

기무사 조사가 끝나고 성탄전 전야인 12월 24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 단둥에서 3월 13일 피습된 지 286일 만의 귀가였다. 첫째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것처럼 행동했다. 아이들은 13년이 지나고 성년이 된 뒤에야 아버지의 사고 사실을 알게 됐다. 조직의 선·후배, 동료들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정구왕에게 안부를 묻거나 만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출근할 곳도 마땅히 없었다. 자택 대기 생활이 몇 달씩 이어졌다.  

당시 정보사는 정구왕을 전역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북한에 포로로 잡힌 뒤 8개월을 견뎌내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공작장교를 강제 전역시키는 건 무리가 있었다. 자칫 정구왕이 반발해 소송전으로 번질 수 있었다. 또 세상에 피랍과 귀환 사실이 유출된다면 김대중(DJ) 정부 초기 남북 화해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귀환한 정구왕이 안기부(현 국정원)와 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에서 조사를 마치자 ‘(정구왕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북으로부터 역용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식의 보도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정구왕에게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 희망 전역을 종용했다. 군무원 3급 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3급 군무원은 군인으로 치면 중령에서 대령급 부서장에 준하는 직책이다.  

 
전역이라는 채찍과 함께 주는 당근이었다. 군무원을 하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진급이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적은 자리였다.  

 
당시 그의 군 생활은 18년 6개월째로 들어가고 있었다. 군인 연금은 군 복무를 1년 더 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전역을 강요했다. 그는 속으로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 너무 많은 고생과 눈물만 줬다”고 생각하며 희망 전역서를 썼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의 북한 피랍을 공모한 휴민트 장세영의 사진. 정구왕은 사진 뒤에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젠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어 보관해왔다. 취재팀은 정구왕씨로부터 장세영의 얼굴이 모두 드러난 사진을 제공받았으나 일부는 보이지 않도록 처리했다. 사진 정구왕 제공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의 북한 피랍을 공모한 휴민트 장세영의 사진. 정구왕은 사진 뒤에 ‘와신상담’ ‘나를 죽였으니 이젠 니놈 차례다’라는 글을 적어 보관해왔다. 취재팀은 정구왕씨로부터 장세영의 얼굴이 모두 드러난 사진을 제공받았으나 일부는 보이지 않도록 처리했다. 사진 정구왕 제공

귀환 6개월 만에 '희망 전역'

 
1999년 5월 전역해 그해 11월부터 군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도 과천 청계산 자락에 있는 정보사 연구단에 40세에 3급 부이사관이란 직급으로 들어갔다. 조직의 선‧후배와 동료들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정구왕을 만나기를 원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는 2017년 6월에 퇴직했다. 현역 군인으로 19년, 군무원으로 18년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3사관학교 생도 기간까지 포함하면 39년을 군문에 있었다.    

정구왕 전 중령이 최근 지인들에게 소량 인쇄해 나눠준 회고록. 사진 정구왕

정구왕 전 중령이 최근 지인들에게 소량 인쇄해 나눠준 회고록. 사진 정구왕

 
정구왕은 직접 써 인쇄한 소량의 회고록을 최근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단 책자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이해관계의 시간도 충분히 지났다는 판단과 함께 이제는 내 이야기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섰다. 지난 25여년간 그때그때 놓치지 않으려고 기록해 두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정구왕은 납치 사건이 일어난 ‘1998년 3월 13일 금요일’은 표지에 표기했다. 회고록 마지막에 원고를 마무리한 날짜인 ‘2024년 10월 17일’을 적었다. 그 밑줄엔 자신의 영문 이름을 딴 ‘CKW’를 서명 대신 적었다. CKW는 지난 26년 동안 그의 피랍 사건 주위를 맴돌던 암호명이기도 하다.  

 
정구왕은 지난 8월부터 취재팀을 만날 당시 “개인 부주의로 인한 미인계로 내가 사라졌었다는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탈출한 이후 그는 자신의 사건을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확인조차 없이 나오는 언론 보도에도 항의하지 않았다. 2017년까지 정보사에 몸을 담고 있었고, 퇴직 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가 침묵한 이유다.  

10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전시실을 둘러 본 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지난 6월부터 1950~53년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관련한 특별 전시행사를 열고 있다. 정구왕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90년대 후반 현지 브로커의 도움으로 북한 함경북도 탄광 노동자로 살던 국군포로가 귀순한 사례도 있다. 전시회 내용은 기사와 직접 관계없음. 장진영 기자

10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에서 정구왕 전 정보사 중령이 전시실을 둘러 본 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지난 6월부터 1950~53년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관련한 특별 전시행사를 열고 있다. 정구왕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90년대 후반 현지 브로커의 도움으로 북한 함경북도 탄광 노동자로 살던 국군포로가 귀순한 사례도 있다. 전시회 내용은 기사와 직접 관계없음. 장진영 기자

 
그는 회고록에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최전선에서 활약한 공작 장교의 납치사건을 홍등가 야담으로 변질시킨 과오가 시정되고, 이제라도 세상에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나는 정의롭고, 상대는 나쁜 사람이고, 조직은 정의롭지 못했다? 그게 아니다. 조직원이자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받고 싶다. 정보사만큼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첨단에 선 조직이 있는가? 개인의 소원을 수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조직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더중앙플러스 -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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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


① “북한, 25년 전 날 납치했다” 전설의 블랙요원이 나타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673

 
② 北납치 정구왕 “날 총살하라”…고문 협박에도 숨긴 1가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387

③ 위조여권 평양 탈출극 짰다…정구왕 풀어준 북한의 속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449

 
④北 탈출에 “사우나서 보자”…정보사 접선지에 숨은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6133

 
⑤조국은 내게 눈가리개 씌웠다, 北탈출 요원에 새긴 주홍글씨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7969

 
⑥스파이 본능에 만난 리계향…‘답정너 수사’ 모멸 준 수사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669

 
⑦“98년 3월 13일, 나를 죽였다” 정구왕은 배신자 얼굴 깠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1413

 
⑧정구왕이 26년 비밀 푼 이유 “목숨 건 스파이들 지켜달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3175

 
〈제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전 정보사 대령의 증언

① “황장엽 망명, 내가 수습했다”…법정에 선 비운의 공작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861

 
② 31쪽 공소장 다 뒤져봤다…수미테리 홀린 유혹 실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479

③ “금창리 핵시설” 한미 낚였다…北 ‘비닐봉투 역공작’ 전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190

 
④ “야동 5만달러어치 구해달라” 북한군 중좌의 황당한 연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8821

 
⑤ “북한 수중 자살특공대 준비” 첩보 6개월뒤, 천안함 터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0366

 
⑥ 임태희·류우익 사인한 명함…평양행 티켓, 3번 무산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1794

 
⑦ 정규필 “난 이중간첩 아니다”…37년 공작원의 5가지 반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239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① “동무는 남조선 혁명하시오”...18세 김동식, 인간병기 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198

 
② “혁명적 자폭” 세뇌된 김동식…폭파범 김현희도 동문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583

 
③ 9년 갇힌 채 적구화·밀봉 훈련…평양 간첩, 서울 사람이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92

 
④ 74세 할머니 간첩, 이선실…포섭 타깃은 김부겸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769

 
⑤ “밤 12시 평양방송 들으시오” 김부겸 허탕뒤 포섭한 ‘H선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2409

 
⑥ 브래지어 싸들고 잠수정 탔다…‘할머니 간첩’ 월북 때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4108

 
⑦ 공작조 10팀이 남한 누볐다…품성까지 적힌 ‘포섭 리스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5606

 
⑧ 北도 포섭 1순위는 SKY 출신…간첩 만난 미래 장관·의원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227

 
⑨ 대선 2년 전 “김대중 될 거다”…北, 고은 포섭 지령 내린 까닭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837

 
⑩ 경찰관 2명 쏜 남파간첩, 29년 만에 용서 구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