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영어읽자 "발음이 달라요"…베일 벗은 AI디지털교과서

“교실은 체험의 장으로, 교사는 수업의 디자이너로 변한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의 프로토타입을 써 본 교사와 개발사 관계자들의 평가다. 중학교 정보 교과서와 프로토타입 개발에 참여한 에듀테크기업 엘리스의 김재원 대표는 “영어 시간에 만든 문장을 디지털교과서의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AI디지털교과서는 내년부터 우선 4개 학년(초등 3·4, 중1, 고1)에 도입된다.  교육부는 2일 4개 학년의 3개 과목(영어, 수학, 정보) 검정통과본 76종을 각 학교의 선정 담당자들에게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각 학교가 AI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하면 172만1472명의 학생이 내년부터 AI디지털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 2028년까지 초등 3~고 3학년까지 국어·기술가정·실과를 제외한 전 과목에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초·중·고 영어 7개 발행사 중 참여를 희망한 2개 AIDT 발행사가 출입기자단에게 AI 디지털 교과서 주요기능을 설명하고 교육디지털원패스를 통한 AIDT 접속 절차, 웹 전시본을 활용한 교사·학생 간 AIDT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초·중·고 영어 7개 발행사 중 참여를 희망한 2개 AIDT 발행사가 출입기자단에게 AI 디지털 교과서 주요기능을 설명하고 교육디지털원패스를 통한 AIDT 접속 절차, 웹 전시본을 활용한 교사·학생 간 AIDT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잠자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다

 
AI디지털교과서가 기존 서책형 교과서와 전자책(PDF파일)과의 큰 차이점은 수업이 학생의 체험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형성평가, 단원평가 등 교사가 학생에게 부여하는 과제가 다양한 체험(말하기, 그림 그리기, 조별 활동 등)으로 제시되고 수업 중에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AI디지털교과서와 학생 간에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챗GPT처럼 대화형으로 질문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생성형AI가 탑재돼 AI튜터(챗봇) 역할을 한다. 학생이 문장을 읽으면 태블릿PC에 내장된 AI가 어법상 빠진 단어와 발음을 피드백해주는 식이다.  


김재원 대표는 “정보 교과의 경우, ‘서책형 교과서로 수업할 때 30명 중 20명이 질문을 했다면, AI가 직접 오류를 잡아주니 질문하는 학생이 10명으로 줄었다’는 교사들의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소극적인 학생, 다문화 학생, 장애 학생 등 자칫 수업에서 소외될 수 있는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접근성도 강화됐다. YBM과 함께 초등 수학·영어 교과서를 만든 에누마코리아 관계자는 “각국의 자막 기능, 글자 확대 기능 등 수업 소외 계층을 위한 부가 기능이 다수 탑재돼있다”고 설명했다.  

교사는 수업의 설계자로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 수준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교사가 낸 과제를 풀면 교사만 볼 수 있는 대시보드에 채점 결과가 바로 뜨는 기능이 AI디지털교과서에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 수준별 문제 배분도 가능하다. 박은혜 아산테크노중 수학 교사는 “내가 사용한 프로토타입 교과서에는 다섯 개의 수준으로 나눈 문제(AI코스웨어)가 탑재돼 있었다. 이를 학생별, 학급별 수준에 맞게 선택만 해주면 학생들이 AI가 낸 문제를 반복해서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를 찾은 관람객이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9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를 찾은 관람객이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박 교사가 AI코스웨어를 통해 방과 후 교실에서 가르친 학력 미달 학생 20여 명의 기초학력 도달률은 14%에서 한 학기 만에 48%로 높아졌다고 한다.

AI코스웨어의 문제 생성, 채점 기능이나 기본으로 탑재된 영상 자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업 준비를 위한 교사들의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금성출판사와 고등학교 정보 교과서를 만든 엄은상 팀모노리스 대표는 “과거엔 서책형 정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코딩의 교육 환경을 구현하려면 학생들이 특정 사이트에 찾아가 프로그램 까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며 “AI디지털교과서 정보 교과서는 접속만 하면 바로 모든 프로그램이 깔린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할 수 있고, 모르는 건 한글로 AI챗봇에게 물어보면 절반 정도는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영어 AI디지털교과서 집필자로 참여한 이석영 서울 상도중 교사는 “이제 교사의 역할은 지식의 전달자에서 수업의 기획·설계자, 디자이너로 전환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적응 기간 필요할 듯

 
현장 교사들에겐 적응 기간이 필요해 보인다. 세종시의 한 1학년 초등교사는 “교사 입장에선 잡무가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 때문에 (AI디지털교과서가 적용되는) 3·4학년만 피하면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어 “AI디지털교과서의 교육적 면면보다는 학교가 갖고 있는 기존 태블릿PC 사양에 맞는지에 급급해 교과서를 선정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흥미 위주의 활동 수업을 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는 입시와 연관돼 활용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