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딸 유괴할거야" 협박문자…학대전담 공무원 2년도 못 견딘다 [아이들의 다잉메시지]

3048명 아이들의 다잉메시지
‘정인이법’ ‘민식이법’…. 학대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을 딴 법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일사천리로 없는 법까지 만들지만 대부분 아동은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검토하지 않은 채 사망 처리된다. 반면에 미국·영국·일본은 일찍 아동사망검토제(CDR)를 도입해 재발을 막을 예방책을 찾는다. 중앙일보는 국과수가 최근 10년간 부검으로 확인한 3048명의 아이들이 남긴 ‘다잉메시지’를 통해 어른들이 관심과 주의를 조금 더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많다는 사실을 심층 취재했다.
 
인천 강화군청 드림아동보호팀 소속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정태영(50) 주무관은 3년 가까이 홀로 일했다. 학대행위 의심자들의 지속된 협박과 악성 민원 탓에 직원들이 그 자리를 기피하면서다. 정 주무관도 2022년 4월쯤 학대행위 의심자에게 “네 딸을 유괴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받았다. 쓰레기가 가득한 환경에 2살짜리 아이가 산다는 신고에 분리 조치를 하자 친부모가 보인 반응이었다. 결국 정 주무관은 그 부모를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했다.

‘숨은 죽음’ 막아야 하는데…현장 떠나는 ‘아동보호 삼각편대’ 

최근 보건복지부 등은 아동보호체계 고도화를 위해 아동사망검토제(Child Death Review)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모든 아동 사망을 심층 분석해 제도·정책 개선사항을 도출하는 제도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후속 조치를 담당할 ‘아동보호 삼각편대’가 현장을 떠나고 있다. 아동보호 삼각편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아동학대전담공무원, 학대예방경찰관(APO)이다.

박지성 인천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이 사례관리를 위해 학대피해 아동 민서(11‧가명)의 집을 지난달 7일 찾았다. 학대 재발 방지와 가정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아보전에선 퇴사가 이어진다. 이찬규 기자

박지성 인천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이 사례관리를 위해 학대피해 아동 민서(11‧가명)의 집을 지난달 7일 찾았다. 학대 재발 방지와 가정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아보전에선 퇴사가 이어진다. 이찬규 기자

 
박지성 인천서부 아보전 팀장은 2020년 창립 멤버 14명 중 유일하게 남은 상담원이다. 아보전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아동학대로 판단한 가정의 사례관리와 회복을 지원하는 민간 위탁기관이다. 인천서부 아보전은 올해 채용 공고를 3번 내고서야 겨우 지원자를 받았다. 박 팀장은 “담당 직원이 떠날 때마다 피해 아동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가장 혼란을 겪는 건 피해 아동”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평균 근속연수는 15.5개월이었다. 지난해 아보전 종사자 평균 근속연수는 2.3년에 불과했다. APO는 2021년 737명에서 지난 10월 677명으로 감소했다.

비협조적인 학대자와 씨름하는 건 예삿일이다. 이은선 서울 은평경찰서 APO는 “학대 행위 의심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가정 회복도 고려해야해서 강제 개방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태광 대전 아보전 팀장은 “최후의 수단인 학교를 통한 아이 모니터링마저 학부모 입김에 따라 협조를 받기 어려울 때도 잦다”고 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아동학대 판단율 감소세…“현장 개선 없으면 CDR 무의미”

아동보호 현장에선 ‘잦은 이탈→전문성 부족→소극적 판단’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지자체는 밥을 잘 먹이지 않고 겨울에 옷을 제대로 입히지 않은 부모에 대해 방임이 아니라고 지난 1월 판단했다. 아동을 집어던져 사례관리를 받고 있던 부모였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고소·민원 위협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아동학대 판단율은 2019년 78.3%에서 지난해 56.2%에 그치며 꾸준히 감소세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은 관련 경험이 있는 APO를 채용해 5년간 의무 복무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 복지부는 전문경력관 채용이나 전문직위 활용 등을 지자체에 권고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보호 인력이 충분하지 않거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아동사망검토제로 도출된 결과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아동사망검토제와 조기개입 시너지 효과 기대”
지난달 4일 만난 박기준 서울동남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아동학대 예방·조기지원 시범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지난달 4일 만난 박기준 서울동남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아동학대 예방·조기지원 시범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초등학생 민재(가명)는 아동학대보호 사각지대에 놓였었다. 부모가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인 민재를 제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판단하면서다.

대신 민재네 가정은 서울동남권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으로부터 관리를 받는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아동학대 예방·조기지원 시범사업’(조기개입) 덕분이다. 조기개입은 아동학대 사례엔 해당하지 않지만 위험 요소가 있는 가정에 적용할 수 있는 제도다. 아보전 등에서 심리치료, 놀이치료, 기관 연계 심리상담, 훈육법 교육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박기준 상담원은 “가족 기능을 회복하고, 아동학대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동보호 현장에선 조기개입 제도와 아동사망검토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모두 처벌이 아닌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하는 대책이다. 아동사망검토제가 도입되면 조기개입이 필요한 사례 선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명확한 학대 사례 판단 기준을 정립해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을 발견할 수도 있다.

김병익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 협회 사무총장(서울북부 아보전 관장)은 “처벌 강화, 신고 강화 등 추상적인 대안만으로는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없다”며 “아동사망 분석으로 아동학대 위험요소를 세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개입을 발전시켜 유형별 아동학대 예방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1화 - 아이들의 ‘숨은 죽음’
2화 - 죽음 막는 아동학대 프로파일링
3화 - 우연한 아동 사고사는 없다
4화 - 아동사망검토, 해외는 어떻게? 

※아래 링크에서 시리즈 기사를 읽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series/11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