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10월 카메라등이용촬영·촬영물등이용협박·스토킹처벌법위반·주거침입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하급심에서 모두 유죄로 판단한 건 잘못이라며, 촬영 부분은 무죄로 판결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2년여간 교제했던 여성과 영상통화 중 피해자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녹화하고, 헤어진 뒤엔 이를 퍼뜨리겠다며 협박한 혐의를 받았다. 또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열려 했으며, 틱톡·인스타그램에 피해자의 영상·사진을 올렸다. 검찰은 각각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과 이용협박, 주거침입미수, 스토킹처벌법 위반,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반포 등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됐다. 수원지법은 지난 2월 “피해자 몰래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촬영했다가 이를 유포할 듯이 협박했고 실제로 온라인에 전시했다”며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넉 달 뒤 수원고법도 “피해자 몰래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촬영하였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온 뒤 A씨를 담당하게 된 새 국선변호인이 새로운 주장을 폈다. A씨가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게 아닌 만큼, “카메라 등을 이용해 (…) 사람의 신체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를 처벌하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14조 1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앞선 대법원 판례를 감안한 전략이다. 대법원은 2018년 3월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불특정 남성들에게 여성 행세를 하며 영상통화를 제의해 그들의 나체 영상을 녹화하고 온라인서 판매한 사건에 대해 불법촬영죄는 아니라고 봤다. 또 2013년 6월에도 여중생을 협박해 화상채팅으로 알몸을 보이게 한 뒤 이를 촬영한 남성에게도 강요·협박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월을 선고했고, 불법 촬영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A씨 판결을 파기환송한 것도 이런 판단의 연장선이다. 대법원은 “A씨가 피해자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피해자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휴대전화 녹화기능을 이용하여 녹화·저장한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가 아니라 피고인의 휴대전화에 수신된 신체 이미지 영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성폭력처벌법 조항이 정하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는 온라인에 피해자의 영상과 사진을 올리겠다고 하거나 실제로 올린 만큼 처벌은 받을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직접 신체를 촬영하지 않은 이상 이를 촬영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다만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일 경우 사건에 따라 처벌될 수 있으며, 성인의 경우라도 민사상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