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덕이는 살림에…韓 닮은꼴 日대학 40% "새해 등록금 인상"

일본 대학 중 40%가 “내년부터 등록금을 올리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대학이 저출생에 따른 정원 미달과 교육·연구비 상승 압박 등에 재정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16년간 등록금을 동결해온 한국 대학 안팎에서 등록금 자율화 요구가 나오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일본 도쿄대학교는 지난 9월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다. 일본 국립대는 지난 20년간 사실상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였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풍경. AFP=연합뉴스

일본 도쿄대학교는 지난 9월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다. 일본 국립대는 지난 20년간 사실상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였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일본 도쿄대학교 교정 풍경. AFP=연합뉴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9~10월 전국 대학 설문조사에서 ‘내년도 이후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검토 중’이라고 답한 비율이 40%(215개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일본 전국의 4년제 대학 764개교(신설교 및 통신제 학교 제외)의 학장(총장)·이사장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이 중 536개교(70%)가 응답했다.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 이유(복수 응답)로 ‘교육·연구 환경의 유지·개선’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광열비(전기·수도요금 등)와 인건비 증가’, ‘설비 노후화 대응’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일본 대학들은 디지털화에 따른 시설·시스템 확충,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영어교육, 유학 지원 등으로 인한 각종 비용 상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우수 교원 확보를 위해 급여 인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사립대 80% ‘인상 절실’

특히 학교 재정 중 등록금 비중이 높은 사립대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등록금 인상’을 언급한 대학 중 90%가 사립대였다. 시설 유지·보수 등 여러 측면에서 재정 부담이 큰 대규모 대학(정원 8000명 이상)일수록 등록금 인상 의지가 강했다. 이들 대학 중 ‘등록금을 올리거나 검토 중’이란 응답이 80%로, 소규모 대학(정원 2000명 미만)의 응답(40%)과 큰 차이를 보였다. 


무더기 정원 미달 사태도 재정 악화와 등록금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사립학교 진흥·공제사업단에 따르면 올해 입학자 수가 입학 정원보다 적은 4년제 사립대는 354개교로 전체의 59.2%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20년간 등록금 동결된 국립대

일본에선 국립대의 등록금 동결 문제가 더 문제시되고 있다. 국립대의 경우 일본 정부가 정한 등록금 표준액에서 최대 20%까지만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전국의 국립대를 법인화한 이듬해인 2005년부터 20년간 이 표준액은 53만5800엔(약 503만원)으로 변함이 없고, 대다수 국립대는 이 표준액대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다.  

같은 기간 사립대가 그나마 20% 정도 등록금을 올리는 상황에서도 국립대는 실질적으론 마이너스 등록금 정책을 고수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3월 열린 중앙교육심의회(문부과학상 자문기구) 관련 회의에선 “(표준액을) 현재의 약 3배인 150만 엔(약 1403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이토 고헤이 게이오대 총장)는 지적까지 나왔다. 또 일본사립대학연맹도 지난 8월 발표한 건의문에서 국립대의 등록금 상한제 폐지를 주장했다. 등록금을 올려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지난 8월 22일 도쿄대의 상징적인 건물인 야스다 강당 앞에서 한 남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월 22일 도쿄대의 상징적인 건물인 야스다 강당 앞에서 한 남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처럼 오랜 기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국립대 재정에서 차지하는 등록금 의존도는 급격히 떨어져 있다. 도쿄대의 경우 2023년도 수입 2680억 엔(약 2조5053억원) 중 등록금 비중은 6%에 그쳤다. 대신 정부의 운영비 교부금이 30%나 됐다.

하지만 일본의 국고 사정상 앞으로 이런 교부금도 점차 줄어들 전망이어서 국립대들도 등록금 인상 시동을 걸고 있다. 일례로 도쿄대는 현재 53만5800엔인 연간 등록금을 내년에 64만2960엔(약 601만원)으로 올리기로 지난 9월 확정했다.

국립대 특성상 등록금 인상은 사회적인 반발 등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닛케이 조사에서도 국립대 77개교 중 14개교(18%)만 ‘등록금 인상’ 의견을 밝혔다. 또 등록금의 기준점인 표준액을 ‘유지해야 한다’(31%)는 응답과 ‘개선해야 한다’(34%)는 응답도 팽팽히 맞섰다.

일부 국립대는 등록금을 올리면서 동시에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혜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런 부담을 해소하려 하고 있다. 앞서 도쿄대는 등록금 면제 대상을 가구소득 연 400만 엔(약 3740만원) 이하에서 600만 엔(약 5610만원) 이하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세계 순위 100위권에 2개대뿐 

일본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논의 배경엔 국제 경쟁력 저하 문제도 있다. 지난 2013년 일본 정부는 “10년 이내에 세계 대학 순위 100위권 안에 10개교를 진입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지난달 영국의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발표한 최신 순위에선 도쿄대(28위), 교토대(55위) 등 단 두 곳만 10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관련, 닛케이는 “서구의 유력 대학들과 비교해 자금력에서 밀리는 것도 한 원인”이라며 “등록금을 비롯해 자체적으로 수입을 어떻게 늘릴지가 당면 과제”라고 짚었다.

지난 2021년 10월 개관한 일본 와세다대학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내부. AP=연합뉴스

지난 2021년 10월 개관한 일본 와세다대학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내부. AP=연합뉴스

한국에서도 2009년 교육부가 등록금 동결을 권고한 이후 사실상 등록금 동결이 이어지면서 교육 여건의 후퇴, 후속 연구세대의 단절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학계에선 외부 지원이 적은 인문·사회계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수도권 대학 교무처장은 “대학원 등록금 인상으로 그나마 일부를 보전해왔는데, 대학원 입학생이 씨가 마르면서 그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외국 학생도 서울의 명문대를 선호하다 보니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26일 국가교육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대학 경쟁력 약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 대학의 열악한 재정, 교육부의 과도한 통제, 혁신 없이 안주하는 대학”이라며 “이 원인을 해결하려면 일단 대학 등록금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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