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궁은 이날 오후 발표한 성명에서 “바르니에 총리가 오늘 공화국 대통령에게 정부 사임서를 제출했으며 대통령은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바르니에 총리와 정부 구성원들은 새 정부가 임명될 때까지 현안을 책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르니에 총리가 이끈 연립 정부는 전날 프랑스 하원으로부터 불신임받았다.
하원은 좌파 정당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발의한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쳐 과반인 331표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로써 지난 9월 취임한 바르니에 총리는 석 달만에 물러나면서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총리 임명권을, 의회는 정부 불신임권을 각각 보유하면서 견제한다.
지난 9월 출범한 바르니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야당과 갈등을 빚다 끝내 의회의 불신임을 받았다. 프랑스 의회가 정부를 끌어내린 건 1962년 샤를 드골 대통령 당시 조르주 퐁피두 정부 이후 62년 만이다.
불신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르니에 총리가 헌법상 비상권한을 이용해 무리하게 예산안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데 있다. 바르니에는 재정 적자 감축을 명분으로 법인세 인상과 부유층 증세를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가 NFP과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양쪽의 협공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긴급 상황에서 의회 투표를 거치지 않고 입법할 수 있는 헌법 조항(49조3항)을 발동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에 분노한 좌파는 물론 극우 진영도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바르니에 정부의 사임을 수락한 뒤 이르면 이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후임 총리를 임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월초 끝난 조기 총선에서 하원 내 1위에 오른 NFP는 좌파 인사를 총리에 앉히라고 마크롱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NFP를 주도하는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마틸드 파노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LCI 방송에 출연해 마크롱 대통령이 NFP 출신이 아닌 총리를 임명할 경우 새 정부도 불신임하겠다고 경고했다.
파노 원내대표는 “오늘의 혼란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마크롱”이라며 “유일한 해결책은 조기 대선으로, 우리는 통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대통령의 사임까지 촉구했다.
전날 NFP와 합세해 바르니에 정부를 불신임한 극우 RN의 장필리프 탕기 의원도 라디오 RTL에 출연해 “우리의 노선은 그대로”라며 새 정부가 RN의 요구 사항을 존중하지 않으면 다시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RN은 바르니에 총리 임명 당시 “RN 유권자를 존중하고 구매력과 안보, 이민 등 주요 긴급 현안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마크롱 대통령 결정에 조건부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