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계획 없다" 美 국방장관, 日만 방문…계엄 여파 한미 협의 차질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필리핀 퀘존시 캠프 아기날도 군 본부에서 열린 연합조정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필리핀 퀘존시 캠프 아기날도 군 본부에서 열린 연합조정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비상계엄의 여파가 한ㆍ미 간 외교안보 협의에도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의 일본 방문 계획이 5일(현지시간) 발표됐는데, 당초 한국 방문도 함께 추진하려 했다가 무산됐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스틴 장관이 7일 캘리포니아주에서 개최되는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일정을 소화한 뒤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라이더 대변인은 “오스틴 장관의 13번째 인도태평양 방문인 이번 일정은 역내에서 미국의 동맹ㆍ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평화안보번영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한 국방부의 역사적 노력 속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금은 방한 적절한 시기 아니라 판단”

앞서 일본 교토통신은 오스틴 장관이 내주부터 일본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해 미ㆍ일,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을 갖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미 국방부는 “오스틴 장관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오스틴 장관이 가까운 시기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은 한국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있었고 ▶이에 따라 야당이 발의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7일 오후에 예정돼 있으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갑작스럽게 사임한 점 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 취재진 질문에 답변 중인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 AP=연합뉴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 취재진 질문에 답변 중인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 AP=연합뉴스

한미 핵협의그룹ㆍ도상연습도 무기 연기

앞서 지난 3일 미 국방부는 4~5일 워싱턴에서 열기로 제4차 한ㆍ미 핵협의그룹(NCG)과 제1차 핵협의그룹 도상연습(TTX)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핵협의그룹은 지난해 4월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선언’의 결과물로, 북핵에 대응하는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만든 고위급 협의체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첫 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했는데, 미국에서 열기로 한 4번째 회의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에 사전 통보 없이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데 대한 바이든 정부의 비판적 인식과 신뢰의 위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라이더 대변인은 향후 NCG 일정에 대한 질문에 “(연기 결정 이후) 아직 업데이트해서 제공할 것이 없다”면서 “한국 상황을 고려할 때 이것(일정 연기)은 신중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한국의 계엄 사태와 관련된 주한미군 태세 변화 여부에 대한 물음에는 “군 태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여러 레벨에서 한국 국방부와 접촉하고 있다”며 “작전적으로나 물리적ㆍ안전 측면에서 (계엄 사태에 따른) 주한 미군에 대한 어떤 중대한 영향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계엄해제 환영…민주적 해결을”

지난 3월 18일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8일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이날 통화를 하고 한ㆍ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두 사람은 통화에서 지난 3일 비상계엄 발표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등 현재까지 이른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ㆍ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거듭 확인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복원력을 높이 평가하고 향후 모든 정치적 이견이 평화롭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블링컨 장관이 조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계엄 선포에 깊은 우려를 표했으며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계엄령이 해제된 것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에 대한 확신을 전달했다”며 “한국의 민주적 절차가 승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통화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전날 “윤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계엄 선포에 대한 미 정부 고위 당국자의 비판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양국 외교 수장의 통화는 비상계엄 사태에서 한ㆍ미 동맹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국무부 “한·미동맹 특정 대통령 초월”

한편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한국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과 관련해 “탄핵은 대한민국 내부 절차로 헌법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는 한ㆍ미 동맹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계속 지지한다”고 말했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 연합뉴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 연합뉴스

파텔 부대변인은 또 “한국과의 모든 우선순위를 계속 발전시키고 강력한 한ㆍ미ㆍ일 3국 파트너십도 진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관계와 동맹, 그리고 우리가 한국과 맺고 있는 파트너십은 양측(한ㆍ미)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한다”며 “이것은 공화당, 민주당 등 여러 다른 행정부를 초월해온 동맹이자 파트너십이며 한국에서도 계속 동일하게 유지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계엄령의 발동과 그러한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확실히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며 “국회 표결에 따라 계엄령이 철회된 것은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5일 오바마 재단의 연례 민주주의 포럼에서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거론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역설했다. 그는 "우리 각자가 우리와 다르게 보이거나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관용을 보여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며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비교적 동질적인 국가에서도 그렇다. 이번 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