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샤오화 지음
심규호·왕러 옮김
소명출판
최근 계엄 사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소름 끼치는 '계엄의 추억'은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일제 강점과 분단 등 우리와 현대사를 엇비슷하게 공유하는 대만은 1949년부터 38년간이나 계엄 상태였다. 그 기간 군사법정을 통해 자행된 백색 테러의 피해자가 무려 14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논픽션 장편소설'이라는 낯선 장르로 분류된 이 책은 70년대 대만에서 유명했던 '인민해방전선사건'의 주범으로 엮인 한 청년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크나큰 고통을 다큐처럼 비춘다. 좌익 사상에 경도돼 허술한 조직을 만든 다음 민족 통일과 반미를 부르짖었다고는 하나, 국가에 '불만을 품고 있던 청년들' 정도였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당국의 자비는 없었다.
무기징역에서 감형돼 11년 만에 석방되지만 청춘과 사랑은 떠나가 버린 지 오래, 정치범의 가족으로 낙인 찍힌 큰누나는 이혼을 하고 만다. 뒤늦게 극진히 모시던 어머니가 마침 대만 땅에서 세상을 뜨자 생전 화장을 거부했던 어머니의 시신을 중국 본토의 고향으로 옮기려 하지만 지난한 과제가 된다. 대륙과 대만, 양안 관계가 경색된 탓이다.
계엄 치하의 국가 폭력, 굴절된 대만 현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실화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