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전 세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강은 이날 오후 1시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한강이 수상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간담회의 최대 화두는 계엄령에 대한 한 작가의 반응.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4일) 이후 사흘 만에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만큼 관련한 질문이 나올지, 나온다면 한 작가가 어떤 답변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날 첫 질문으로 계엄령에 대한 생각을 묻는 취재진에게 한강은 "(과거와) 이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가 돼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런 와중에도 시민들의 행동에서 희망을 봤다고 한 작가는 강조했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는 모습,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군이 물러갈 때는 마치 아들에게 하듯, 잘 가라고 소리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어 한 작가는 군인들의 행동에서도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입장에선 소극적인 것이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선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어 한 작가는 문학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다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도 우회적으로 전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철저히 오해받고 혐오 받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완벽한 객체로서 다뤄지는 인물입니다. 저는 책을 통해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하는데요.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열려있는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문학의 토양인 도서관에서 검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간담회 현장에는 한국과 스웨덴을 비롯해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온 40여 명의 취재진이 참여했다. 스톡홀름 셀라르그랜드 4번지에 위치한 한림원 입구부터 3층 간담회 현장까지 두 번의 신분 증명과 한 번의 소지품 검문이 있었다. 보안 문제로 액체류 반입이 불가해 물병을 급히 버리는 취재진도 보였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 앞서 한강은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노벨박물관에 모여 자신의 소장품인 옥색 찻잔을 기증하고 의자에 서명했다. 그는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잔씩만 마시기"를 자신의 글쓰기 루틴으로 소개하며 찻잔에 담긴 '일상'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한강은 7일 오후 5시 한림원에서 강연에 나선다. 질의응답 없이 1시간 동안 진행될 행사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와 문학 지향을 모국어인 한국어로 설명할 예정이다.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추후 강연 내용이 책으로 출판될 만큼 현지 관심도가 높은 행사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4시부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약 1시간가량 진행된다. 시상식이 끝난 후 오후 7시에는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만찬이 시작된다. 만찬은 대략 4~5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노벨상 만찬은 남자는 연미복, 여자는 이브닝드레스로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지키는 전통이 있다. 예외적으로 한복과 같은 전통 의상도 허용되는 만큼 한강 작가가 어떤 의상을 입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노벨 주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낭독회(12일)에도 직접 참석해 스웨덴 번역가 유키코 듀크, 문학 평론가 크리스토퍼 레안도어와 대담을 진행한다. 낭독회는 스톡홀름 왕립 연극 극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