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탄핵안 오늘 표결 - 정치학자 4인이 본 계엄 파문
2004년과 2016년에 이어 다시 ‘대통령 탄핵’에 내몰린 윤 대통령의 국회 방문설이 돌자 야당이 저지에 나섰다. 탄핵의 경로가 바뀌진 않은 것이다.
이들은 “그간 전임 정권과의 차별화 등 5년 단임제의 제도적 문제가 드러났다면 이번엔 대통령 개성이란 문제가 확 드러났다. 이중의 위기다”(손 교수), “독단적인 대통령과 무책임한 야당의 충돌이다”(강 교수)라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의 잘못이 분명하지만,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도 있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이 어디까지 책임지게 될까.
강원택(이하 강)=“탄핵이 될 듯한데, 정치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도 있다면 져야 한다. 계엄 발동에 대해 조언했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람들도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조진만(이하 조)=“대통령이 도의적으로 인정하고 대응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안 낼 것 같다.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규정하고 야당에 대한 경고라고 한다. 지도자가 국민과 맞설 때, 권력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할 때 굉장히 파국으로 가는데 지금까지 보기엔 어느 정도까지는 파국적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손병권(이하 손)=“대통령 성정 상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느냐’라고 하니 답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완고함을 바꿀 사람이 누가 있나. 대한민국엔 없어 보인다. 대통령은 본인의 결단으로 계엄을 발동했다고 했는데, 아쉬운 건 그 전에 특검 수용 등 뇌관을 미리 제거하는 결단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름 본인이 결단이라고 한 게 (계엄이란) 우스꽝스러운 결과다.”
강=“계엄 때 성명을 보면 기본적으로 야당이 공존의 대상이거나 정치적 경쟁자, 나랑 정치적 시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적이었다. 군대의 힘으로 누르겠다고 작정한 사람이니까 기본적으로 정치적 소양이 없는 거다.”
서현진(이하 서)=“그날 계엄 하는 대신 ‘민주당이 예산을 안 주는 게 말이 되나’ 했으면 오히려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나도 ‘0원(까지 삭감)은 너무 나갔는데’ 생각했다. 설득 대신 군대를 동원했다? 이건 정치를 안 하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다. 결국 탄핵의 키는 국민의힘이 쥐고 있다고 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까 봐 액션을 못 취하고 있으면 장기적으로 국민의힘도 피해를 볼 거다. 8년 전 탄핵 때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건 맞지만 5년 만에 정권이 무너졌다. 그걸 통해 정당도 국민도 학습한 게 있다.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이 상당해 그때처럼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정리하는 게 국민의힘이 살길이고 기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의회 탄핵에 대통령 군 동원, 남미의 현상
한 대표는 5일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탄핵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6일엔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정치인 체포나 계엄군의 중앙선관위 진입 등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강 교수는 “국헌 문란에 대한 심각성이 커서 상황을 이대로 끌고가긴 어렵고 국민의 비판적 시선도 의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탄핵이나 예산안 감액 등에선 민주당도 헌법 정신을 넘어서게 완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도 있다.
강=“정치학자 후안 린츠가 말한 ‘대통령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인데, 이원적 정통성을 가진 입법부와 대통령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대통령제에 미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의회는 탄핵의 형태로 가려 하고, 대통령은 군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남미에서 일어났던 건데 우리의 현실이 된 거다. 야당이 너무 많이 나갔고 대통령도 극단적으로 대응했다. 그간 이론으로만 듣거나 남미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우리 대통령제에서 나타난 것이다.”
서=“대통령제 아래 입법·사법·행정 세 축엔 각자 고유 영역과 권한이 있다. 이걸 최대한으로 쓰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영역 간 공간, 브릿지 같은데서 정치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그 정치가 사라진 거다. 각자 가진 권한을 다 쓰면서 연결고리가 끊어져 이런 파국에 이른 것이다.”
조=“법에 없다는 것은 해도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법에 명시할 필요가 없는 상식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없는 것도 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국회가 다수결로 처리 못한다는 법 조항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는 취지로 말하는데 사실 없다. 민주주의국가엔 다원주의적으로 여러 개의 정당이 있고 가치관과 철학이 다르니 집합적으로 결정하는 거다. 타협·조정하고 정 안 되면 마지막에 최후의 수단으로 다수결로 의사결정하는 거다. 지금은 실질적으로 다수 1당이 다 해버린다.”
윤 대통령을 포함, 대통령들이 정치를 모른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강=“정치가 양극화돼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해진 거다. 윤석열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은 문재인과 다투는 걸 보고 ‘아 잘 싸웠는데’ 이렇게 된 거다. 이 대표도 잘 싸운다고 생각하고. 훌륭한 통치자를 뽑기보다는 상대방을 혼내줄 수 있는 싸움꾼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고, 그 사람들의 기대대로 열심히 싸워서 이 사태가 벌어졌다.”
서=“정당의 책임이 크다. 정권을 잡는 게 중요해 정당이 스스로 길러내지 못했다. 탄핵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저어하는 게 내세울 인재가 없어서다. 민주당도 이 대표 빼곤 인물이 없으니 (이 대표가) 감옥 갈까 봐 난리 치는 것 아닌가.”
현 대통령제의 효용이 다한 것 아닌가.
강=“20년 이상 얘기했는데 이제 다들 비슷한 생각인 듯하다. 큰 틀에서 보면 공감대가 있다.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에게 내각과 통치 전반적인 권한을 맡기자는 것이다. 남은 건 대통령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느냐다. 정책의 영역으로 가면 (총리와) 겹칠 수 있다. 외교를 맡긴다 해도 FTA(자유무역협정)는 국내 기업과 관련된 거다. 이게 대통령 영역인가, 총리 영역인가 분명치 않다. 난 정무적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진오 박사의 (제헌헌법) 처음 안을 보면 대통령에게 (정무적 권한인) 의회해산권, 군정권과 군령권, 총리지명 권한이 있더라. 여전히 분단 상황에서 대통령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 일단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합의하고 대통령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거냐에 대해 논의하면 될 듯하다.”
한국 정치 시스템 취약점, 정점 찍어
손=“개헌되어 총리가 의회 다수의 신임에 의존하게 되면, 대통령과 총리가 한 당에 속한다고 해도 권력을 나눠 갖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대통령과 총리가 상하 관계로 가게 될 수 있다. 그런데 4년 대통령 중임제는 간단히 말해 잘못될 경우 독재를 4년 더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의회제를 찬성한다. 국민이 수용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문제가 있어도 대통령제가 유용하다고 생각했으나 요즘 바뀌고 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에 대한 효용성이 크긴 하지만 YS(김영삼)·DJ(김대중) 같은 인물이 나오겠나
서=“대통령제는 미국에서 생긴, 미국 사람을 위한 미국의 제도다. 이게 수출돼 제대로 하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처럼 되고 우린 대통령 중심제로 변형됐다.”
손 교수와 조 교수는 선거제를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당선되는 단순다수제가 아닌,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비례제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교수는 “1등만 뽑는 선거에선 보수가 과반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비례제를 하면 (의석이) 비슷해진다”며 “그 정도만 되면 국회 내에서 그런 상황을 안 겪을 것이고 대통령도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은 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1석, 국민의힘은 90석을 얻었다. 정작 득표율은 5.4%포인트 차(50.5%, 45.1%)였다.
이재명·한동훈 등 차기 주자들이 이런 개헌에 동의할까.
조=“대선주자급은 대통령제를 포기하기 쉽지 않겠지만,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은 오히려 하고 싶어 할 거다. 이들이 차기 주자들을 압박하는 식으로 개헌 논의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다만 지금의 의원들이 그 정도의 인식과 의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거 국민은 법·제도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민도 법·제도를 통해 이상한 통치자들이 자제력을 잃는 상황을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 개혁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강=“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다 똑같다. 싹 다 갖겠다는 것이다. 이게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꼭 더 나은 통치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손=“대통령제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대통령 개성에서 오는 게 있고 한국이란 맥락 안에 5년 단임제에서 오는 게 있다. 그간 전 정권과의 차별화, 소거의 정치란 5년 단임제 문제만 얘기했는데 이번에 대통령 개성 문제는 드러났다.”
강=“한국 정치 시스템의 전반적인 취약점이 최근 몇 년 사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게 정점을 찍은 것 같다. 터닝포인트다. 8년 전 탄핵 당시에도 시스템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보다 공감대의 강도나 폭은 더 커졌다. 이젠 정말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