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아직 여기 있나요? 이 문으로 나올까요?"
6일(현지시간) 오후 2시 20분. 한강 작가의 기자 간담회를 마치고 스웨덴 스톡홀름 셀라르그랜드 4번지 한림원 건물을 빠져나오는 기자를 누군가 붙잡았다. 중국 출신으로 스톡홀름에 거주 중인 저우양씨였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한 작가를 보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렸다"는 그는 30분 전에 기자회견이 끝났다는 취재진의 말을 듣고 작가의 다음 일정을 물으며 아쉬운 얼굴로 자리를 떴다.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노벨 박물관 앞에서 '노벨 위크'를 즐기고 있다. 홍지유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주간 공식 일정이 시작된 6일, 스톡홀름 시내 곳곳은 노벨상 관련 행사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한림원 옆에 위치한 노벨 박물관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증품과 관련 전시를 관람하려는 방문객들로 건물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섰다. 박물관 밖 광장에서는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를 파는 노점상들이 노벨 주간을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을 맞았다.
스웨덴 스톡홀름 스토르토르게트 2번지에 위치한 노벨 박물관. 매년 12월이면 이 일대에서 시상식과 강연, 전시 등 '노벨 위크'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홍지유 기자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한강 작가는 노벨 박물관을 방문해 자신이 쓰던 옥색 찻잔을 기증했다. 매년 수상자의 기념품을 전시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찻잔에는 일상의 글쓰기 루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기증한 찻잔과 메시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한강의 찻잔은 노벨상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뉴스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잔씩만 마시기"가 그가 밝힌 일상의 모습이다.
6일(현지시간) 한강 작가는 노벨상 박물관을 방문해 찻잔을 기증하고 의자에 사인을 남겼다. 한강의 사인 옆에 아니 에르노(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욘포세(2023)의 사인도 보인다.
이날 노벨 박물관은 한강이 사인한 의자를 1층 기념품샵 옆에 전시했다. 그의 사인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2023년 같은 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사인 옆에 쓰였다. 의자는 4주간 박물관에 전시된 후 박물관 1층 레스토랑으로 옮겨져 손님을 맞는다. "특정 작가를 콕 집어 그 작가가 사인한 의자에 앉고 싶다고 요청하는 손님도 적지 않다"는 것이 노벨 박물관에서 전시 안내를 담당하는 레베카 옥셀스트럼씨의 설명.
노벨박물관 1층 레스토랑. 노벨상 수상자들이 사인한 의자는 4주간 박물관에 전시된 후 이 레스토랑으로 옮겨져 손님을 맞는다. 홍지유 기자
우측 전시장에는 베크만스 디자인대 학생들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를 떠올리며 만든 드레스가 관람객을 맞았다. 한강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흰 드레스는 오른쪽 옷깃과 소매에 검은 천을 써 애도의 의미를 담았다. 허리춤의 그을린 자국은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장치. 치맛단에는 한강 소설의 구절이 영어로 적혀있었다.
베크만스 디자인대 학생들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를 주제로 만든 드레스. 한강을 떠올리며 만든 드레스는 애도의 뜻을 담아 소매와 깃을 검정색으로 제작했다. 홍지유 기자
6일 첫 공식 일정으로 기증품 증정과 기자간담회를 마친 한강은 7일 노벨문학상 강연(lecture)에 나선다. 질의응답 없이 1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연에서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 문학 지향을 모국어인 한국어로 설명할 예정이다.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추후 강연 내용이 책으로 출판될 만큼 현지 관심도가 높은 행사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4시부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약 1시간가량 진행된다. 시상식이 끝난 후 오후 7시에는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만찬이 시작된다. 만찬은 대략 4~5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노벨상 만찬은 남자는 연미복, 여자는 이브닝드레스로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지키는 전통이 있다. 예외적으로 한복과 같은 전통 의상도 허용되는 만큼 한강 작가가 어떤 의상을 입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6일 기자회견에서 한 작가는 검은 스카프와 검은 재킷을 두른 수수한 모습이었다.
한강은 노벨 주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낭독회(12일)에도 직접 참석해 스웨덴 번역가 유키코 듀크, 문학 평론가 크리스토퍼 레안도어와 대담을 진행한다. 낭독회는 스톡홀름 왕립 연극 극장에서 열린다.
스톡홀름=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