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전 세계의 쇼핑 대목이라 불리는 블랙 프라이데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나갔습니다. 이때쯤이면 파격적인 할인 경쟁이 있다 보니 지갑을 꼭 닫고 있기가 쉽지 않은데요, 브랜드마다 해 바뀌기 전 재고를 털고 반짝 매출을 위해 소비자를 유혹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길을 가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 스니커즈 브랜드 베자(VEJA)입니다.
광고 0건, 외부 투자 0%, 악성 재고 0개
사실 수선 외에도 베자의 행보는 여러모로 남다릅니다. 친환경을 지향하면서 공정 무역과 노동권 보장을 가치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를 위해 이른바 3무(無)도 내세웁니다. 광고·마케팅을 일절 안 하고, 외부 투자를 받지 않으며, 악성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고 해요. 브랜드가 덜 알려지고, 천천히 성장할 수밖에 없지만 오히려 이런 남다름에 열광하는 이들이 생겨났죠. 할리우드 배우 에디 레드메인을 비롯해 영국 왕세자빈 케이트 미들턴, 메건 마클 등 많은 셀럽이 ‘내돈내산’으로 베자를 신었고, 국내에서도 감각 있기로 소문난 정재형·고현정이 이 브랜드를 택했답니다. 대체 무엇이 베자를 끌리는 브랜드로 만든 걸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비크닉이 프랑스 파리 본사를 찾았습니다.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브랜드
옛날 인쇄소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베자 본사. 그들의 제품처럼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는데요, 건물 안 쇼룸과 채식 카페로 꾸려진 라운지에서 공동설립자인 세바스티앙 코프(Sébastien Kopp)를 만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지슬랭 모릴리옹(Ghislain Morillion)과 2005년 베자를 설립할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경제학을 전공한 두 사람은 다수 기업을 상대로 지속가능성 관련 컨설팅 업무를 하다 실제 많은 곳들이 시늉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직접 뜻을 이뤄보자고 의기 투합했죠. 특히 베트남·중국 등지를 찾아 의류 공장을 탐방한 뒤 더 나은 패션의 대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스니커즈는 두 사람이 평소 좋아하던 아이템이었죠. 코프는 “세상에 유명한 스니커즈 브랜드는 많지만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제품은 없었다”면서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해요.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며 소재부터 유통까지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죠.
마침내 이들이 정착한 곳은 브라질이었습니다. 왜 그 멀리까지 갔는지 물었더니 “친환경 소재, 공정무역 생산 시스템, 천연고무, 신발 공장, 정당한 근로 조건이 다 모여있는 곳이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어요.
브라질을 생산처로 삼은 베자는 아마존 우림 보호를 위해 시장 가격의 5배로 아마존 고무를 구입합니다. 면은 브라질과 페루에서 생산하는 공정무역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고요. 최근 많은 운동화 회사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밑창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인 거죠.
그럼에도 베자는 지금까지 의미 있는 숫자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 등지에 3000여 개 매장을 냈고, 지난해 기준 연간 매출은 2억 8000유로(약 4235억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의 성장은 정당한 노동환경과 지속가능한 경영방식이 자본주의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례가 된 셈입니다.
신고 싶은 운동화를 만든다
매장에 수선실을 만든 이유
원래 코블러를 맨 처음 도입한 매장은 보르도에 위치한 ‘베자 다윈’이에요. 이곳은 현재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 이상의 지역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다윈은 원래 19세기 건설된 군사기지로, 2007년 '에볼리쉬옹'이라는 민간 업체가 방치된 공간을 인수해 새롭게 조성한 공간입니다. 프랑스 기업 200여 개와 단체 50곳이 이곳에서 친환경 매장을 운영하거나 기후 변화 행사를 열며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죠. 긴급 주거 공간이나 자급자족 텃밭,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후원하는 고등학교 등 교육 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베자가 다윈에 합류한 이유도 브랜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죠.
겉모습을 넘어 이면을 보라
로긴스가 소화하는 베자의 물량은 주당 약 1만 켤레 내외인데요. 검수는 물론, 센터 앞에 설치된 코블러에서 간단한 수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선실까지 물건을 보내야 하는 비용이나 폐기율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죠.
“우리는 천천히 가는 브랜드다.” 코프는 대화 중간중간 빠르기보다 천천히 제대로 가고 싶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어요. 지금의 파리 매장 역시 설립 15년 만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곧 20주년을 앞둔 최근에서야 한국·일본에 진출할 계획도 세운다고 해요. 비크닉도 앞으로 베자의 새로운 걸음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뚝심 있는 철학이 아시아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