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7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비상계엄 선언 사태를 빚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계엄을 선포한 것 자체로 헌정을 유린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7일 오후 4시쯤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마주친 직장인 김영신(39)씨는 “오늘 오전 대통령이 한 사과와 의견 발표는 믿을 수 없다”며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정권 퇴진 비상 부산행동’(비상행동)이 주최한 이날 부산 서면 집회는 오후 5시로 예정됐다. 하지만 영상 7도의 포근한 날씨 속에 김씨처럼 일찌감치 거리로 몰려든 시민이 많았다. 오후 4시30분쯤 이미 젊음의 거리 220m 구간이 인파로 가득 찼다. 경찰은 이 거리가 가득 찰 경우 통상 집회 인원 5000명이 몰렸다고 추산한다. 이날 집회 신고 인원은 3000명이었다. 주최 측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모였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우측통행을 해주시고,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길을 터달라”고 거듭 안내했다. 경찰은 이날 경력 300여명을 투입해 집회 안전을 관리했다.
7일 오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주최측이 피켓을 나눠주고 있다. 김민주 기자
5시가 되자 비상행동 측은 “열 받아서 나온 부산시민, 반갑다”는 말로 집회를 시작했다. 이들의 손엔 븕은색과 푸른색 글씨로 ‘윤석열 즉각탄핵’ ‘윤석열 탄핵체포’ 등이 적힌 종이 피켓이 들렸다. 학과잠바를 입은 대학생은 물론 앳띤 얼굴의 중고생과 어린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노년까지 집회 참여 연령층은 다양했다. 6살 딸을 안아 들고 집회에 참여한 정재숙(43)씨는 “이번 계엄을 ‘서울의 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날 밤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시민들이 공포와 절망감을 느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위헌적 행위였다고 비판하며 ‘탄핵쏭’ 등을 열창했다. 집회 시작 30여분 만에 ‘여당 의원들이 탄핵안 표결에 불참했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분위기는 크게 출렁였다. 집회에 나온 한모(46)씨는 “설마설마했는데 충격적”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고,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다. 이토록 많은 시민 목소리를 외면하는 여당 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7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비상계엄 선언 사태를 빚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날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맞아 각 지역 집회를 주도하는 지도부 등은 대부분 서울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에 대한 사과 뜻을 밝히며 “임기를 포함해 향후 정국 안정을 당에 일임한다”고 발표하며 2선 퇴진을 시사했다. 그런데도 부산은 물론 광주와 전북, 대구ㆍ경북, 제주 등 전국 각지 시내에서 수백~수천명 단위 집회가 열렸다.
광주 시민사회와 5ㆍ18 단체들은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국민은 더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길 생각도, 국민의힘에 수습을 맡길 생각도 없다”며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31곳 대학의 대학생들도 이날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 부결을 알리고 있다. 사진 뉴스1
시국선언에 참여한 경북대 김상천 학생은 “계엄령이 터졌을 때 대학생과 청년의 정치 무관심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치욕스러운 약점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행동하자”고 말했다. 동국대 홍예린 학생은 “국민은 기필코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윤석열은 실패했다. 이제는 탄핵뿐”이라고 주장했다.
시국선언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200여명이 참여했다. 가톨릭대·건국대·경희대·국민대·경북대·고려대·동국대·부산대·서울교대·숙명여대·이화여대·아주대·인천대·제주대·한국외대·한양대·홍익대 등 31개 대학생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학생 시국대회'에서 대학생들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