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2023년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 그랜드홀에서 진행된 30여분의 노벨상 연설에서다. 이날 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만의 언어'를 찾아낼 수 있었는지, 글로 세계와 교감할 수 있었는지를 진솔하게 고백했다. 그리고 "내 글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시상식에 3일 앞서 하는 노벨상 연설은 '귀로 듣는 문학작품'으로 불린다. 6개의 노벨상 가운데 문학상 수상자에게만 유일하게 한림원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진다. 초기에는 노벨상 시상식 당일 만찬에서 연설을 하다 1960년대부터 따로 치러지는 하나의 행사로 자리잡았다. 노벨상 연설에서 세계적인 문호들은 자신의 문학 세계와 혼란한 세상 속 문학의 역할 등을 유려한 문장과 비유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매년 이 연설에 독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연설만 모은 책 『아버지의 여행가방』(문학동네)도 출간됐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도 욘 포세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로 감동을 안겼다. 평생 시인을 꿈꿨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작가의 아버지는 여행가방 속에 언제나 두툼한 원고 뭉치를 넣고 다녔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내가 죽으면 읽어 보라"며 원고가 든 여행 가방을 아들의 작업실에 놓고 간 아버지. 그는 이 연설에서 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복잡한 마음, 문학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으며 자신이 노벨상을 타기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했다.
비극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벨상 연설의 주요 주제였다. 1949년 수상자인 윌리엄 포크너는 당시 노벨상 기념 만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통과해 온 인류를 예찬한다. "저는 인류가 그저 견뎌낼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인류는 승리할 겁니다. 인류는 영혼을, 연민하고 희생하고 인내할 수 있는 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작가의 의무는 이런 것을 쓰는 겁니다."
1957년 수상자 알베르 카뮈도 "세계 모든 곳이 전쟁터에 다름 아니었던" 20년을 회상하며 이 광기의 역사 속에서 "오늘을 쓴다는 것"을 하나의 명예로 여겨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특권으로서 이 상(노벨문학상)을 받지 않고, 불행과 박해의 편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영예를 위해 이 상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1994년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전후 일본인 작가로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을 고백하며 "언어를 통해 수용자와 포용자 모두를 개인과 시대의 아픔으로부터 회복시키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2008년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자신이 허기진 자,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의 증인이 되기를 원할 뿐이라며, "문학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남녀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들의 발언권을 요구하며, 그들의 다양한 말을 사람들이 듣도록 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의 시 같은 연설을 남긴 작가들도 있다. "옛날 옛적에 한 노파가 살았습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지만 지혜로웠습니다"라는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한 1993년 수상자 토니 모리슨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 젊은이 몇몇이 노파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와 질문을 던진다. "노파, 지금 내 손에 새 한 마리가 있소. 이 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말해보시오."
모리슨은 노파와 젊은이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언어와 문학의 관계, 세대·인종간 소통의 문제, 문학의 미래 등을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산문시'는 대화를 통해 젊은이들과 화해한 노파의 이런 말로 끝을 맺는다. "나는 이제 자네들을 믿겠네. (중략) 이 새를 이제 안심하고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자 보라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함께 만든 이것이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