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받았다" "기억 안나"…국정원 '정치인 체포' 지시 미스터리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국정원에 하달됐다는 '정치인 체포 지시'와 관련해 체포 명령의 실체부터 명단의 출처 등과 관련해 엇갈린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고, '체포 대상자 명단'까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통해 전달받았다는 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주장이다. 하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반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4일 자정 계엄군 병력이 국회 본청에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보좌진과 의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4일 자정 계엄군 병력이 국회 본청에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보좌진과 의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뉴스1

홍 "여인형이 체포 명단 알렸다" 

우선 윤 대통령의 명시적인 체포 지시가 있었는지를 두고서도 주장이 서로 다르다. 홍 전 1차장은 지난 6일 신성범 국회 정보위원장과 면담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후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고 배석했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홍 전 1차장은 이후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는데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여 전 사령관은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대상자) 소재 파악이 안 된다"며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면서 "위치추적을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검거 지원을 요청한다"는 게 여 전 사령관의 실제 언급이었다고 홍 전 1차장은 국회에 전했다.

홍 전 1차장은 7일 KBS 인터뷰에서도 "(윤) 대통령이 제게 직접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던 건 아니고 명단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밝혔다"고 부연 설명했다. 여 전 사령관에 대해선 "(계엄에) 진심으로 참여했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즉 "싹 다 잡아들이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와 여 전 사령관의 위치 추적 및 검거 지원 요청이 '한 세트'로 이뤄졌다는 게 홍 전 1차장의 주장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장원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왼쪽)과 윤오준 3차장이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장원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왼쪽)과 윤오준 3차장이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여 "위치 확인 지시 받았지만 기억 안 나" 

그러나 정작 여 전 사령관은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른다"며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그는 같은 날 YTN 인터뷰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한테 '이런 사람들의 위치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시를 받았다"면서도 "위치를 확인한 다음 뭘 할 건지도 임무가 불명확했다. 헷갈리던 상황에서 그냥 그게 다"라고 말했다. 

특정인에 대한 위치 확인 임무를 받은 건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행했는지 등에 대해선 함구하는 모양새다. 그의 설명만으로는 위치 파악의 목표가 체포인지, 다른 목적의 신병 확보 등인지도 알 수 없다. 여 전 사령관은 "'싹 다 잡아들이라'는 얘기가 없었단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얘기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홍 전 1차장이 받았다는 '윤 대통령의 지시'가 국정원 어느 선까지 공유됐는지도 불분명하다. 홍 전 1차장은 지난 3일 밤 조태용 국정원장에게만 이를 대면 보고했다고 주장한다. "조 원장에게 '윤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했다'고 보고했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내일 얘기합시다' 그랬다"(KBS 인터뷰)는 것이다.

그는 박선원 민주당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에서도 같은 취지로 주장했다. "조 원장에게 '대통령 전화를 받아 방첩사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재명·한동훈 잡으러 다닌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조 "尹, 체포 지시 없었다" 

그러나 조 원장의 기억은 전혀 다르다. "(홍 전 1차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지시가 있었다'고는 했지만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조 원장은 7일 KBS에 밝혔다.

조 원장은 또 "(정치인 체포 지시는)6일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지금 '정치인 체포' 지시가 핵심인데,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3일 밤 독대에 대해 조 원장과 홍 전 1차장이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셈이다. 

홍 전 차장이 조 원장에게 보고했다는 "이재명·한동훈 잡으러 다닌다"는 내용도 국정원이 이런 지시를 받았다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는 "(누군가가 잡으러)다니고 있다더라"는 '전언'이었다는 게 관련 소식통의 설명이다. 당시 이미 계엄에 돌입한 상황에서 홍 전 차장은 "계엄사 혹은 방첩사와의 협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만 보고했고, 조 원장은 이를 계엄 하에서 국정원의 역할을 검토하라는 취지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홍 전 차장이 자신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했다면서, 조 원장에 대해 체포 지시 보고를 무시했다고 비난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7일, 8일 이틀 연속으로 별도 입장을 내고 홍 전 1차장의 주장을 재반박했다. 국정원은 "홍 전 1차장은 지시를 받았다는 3일부터 최초 (언론) 보도가 나온 6일 오전까지 4일 동안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내부 누구에게도 이를 보고하거나 공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체포 지시의 실체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홍 전 차장이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비화폰(보안 처리 전화)은 통화 송수신 시간은 기록이 남아도 녹음은 불가능하다.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한 정확한 실체는 확인이 어려울 수 있다. 

국가정보원 김남우 기조실장(왼쪽부터), 황원진 2차장, 조태용 국정원장, 윤오준 3차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은 불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가정보원 김남우 기조실장(왼쪽부터), 황원진 2차장, 조태용 국정원장, 윤오준 3차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은 불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정원장이 건의" vs "대통령이 결정"

이에 더해 홍 전 1차장의 면직 사유를 두고도 주장이 엇갈린다. 조 원장은 "대통령으로부터 (홍 전 1차장) 경질을 지시 받은 적 없다"며 본인이 먼저 윤 대통령에게 인사 조치를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8일 국정원은 "계엄 해제 이후 홍 전 1차장은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국정원장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하는게 좋겠다'라고 말했고 국정원장은 이런 언행이야말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대통령께 교체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조 원장은 앞서 언론에도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반면 홍 전 1차장은 "조 원장이 5일 오후 '사직을 좀 하셔야겠다'며 '대통령이 그렇게 결정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고 KBS에 밝혔다. 홍 전 차장은 6일 정보위원장 면담에서도 "지금 용산에서는 1차장 때문에 1차 비상계엄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일설에는 이것 때문에 (윤 대통령이) 노발대발하며 (자신을) '경질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전 1차장은 결국 지난 6일 밤 해임됐다. 같은 날 국정원은 홍 전 1차장 후임으로 오호룡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임명했다고 8일 뒤늦게 밝혔다. 국정원은 오 신임 1차장에 대해 "30여년 간 해외 정보 수집, 대외 협력 등 해외 분야 업무에만 종사한 순수 정보맨"이라고 설명했다.